한성숙 네이버 대표(왼쪽부터),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김효섭 블루홀 대표.
한성숙 네이버 대표(왼쪽부터),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김효섭 블루홀 대표.
비(非)이공계 출신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기는 테크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게임 분야 테크기업을 창업하고 안착시킨 이공계 출신 CEO들이 인문학, 경영학 전공자 등을 활발히 기용하는 추세다. 회사 덩치가 커지면서 기술개발 영역을 넘어 재무, 마케팅, 대(對)정부·국회 업무도 증가하면서다.

포털사이트 다음과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 등을 운영하고 있는 카카오의 수장은 지난달 여민수·조수용 공동대표체제로 바뀌었다. 각각 광고사업총괄 부사장과 공동브랜드센터장을 지내다가 대표직에 올랐다.

여 대표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조 대표는 서울대에서 산업디자인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직전 대표였던 임지훈 카카오 미래자문역은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지난 1월부터 게임업체 넥슨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이정헌 대표는 광고홍보학과 출신이다. 넥슨코리아의 모회사 넥슨(일본 법인)의 오웬 마호니 대표는 아시아학을 전공했다.

다른 인터넷·게임업체에도 비이공계 출신 CEO가 포진해 있다. 국내 1위 인터넷업체인 네이버의 한성숙 대표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간편결제 서비스 등을 하는 NHN엔터테인먼트의 정우진 대표는 사회학과 출신이다.

게임개발회사 블루홀의 김효섭 대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김태영 웹젠 대표, 문지수 네오위즈 대표,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등도 경영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상위 열 개 인터넷·게임업체 중 일곱 곳의 대표를 비이공계 출신이 맡고 있다. 엔씨소프트(김택진 대표) 스마일게이트(권혁빈 대표) 컴투스(송병준 대표)만 공학도 출신 창업자가 여전히 회사를 이끌고 있다.

국내 인터넷산업 태동기인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에는 정보기술(IT) 기업 CEO는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었다. NHN(현 네이버)을 세우고 대표까지 지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각각 컴퓨터공학과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포털업체 다음(현 카카오)을 설립해 2007년까지 대표를 맡았던 이재웅 쏘카 대표도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다. 넥슨 창업자로 넥슨 대표를 지낸 김정주 NXC 대표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인터넷회사는 대부분 이공계 출신 개발자들이 뭉쳐 설립했기 때문에 이공계 출신이 대표를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김정수 명지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는 “기술이 평준화하면서 재무 관리, 마케팅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경영전략 차원에서 비이공계 출신 CEO가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은 직접 인터넷 서비스나 게임을 개발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쌓고 올라온 베테랑이다.

한성숙 대표는 인터넷산업 초창기부터 여러 전문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엠파스 검색사업본부장, 네이버 서비스총괄이사 등을 거쳤다. 이정헌 대표는 넥슨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넥슨맨’이다. 김 교수는 “포털 서비스와 게임에서 기술보다 콘텐츠가 중요해진 가운데 이들의 경험이 필요해졌다”고 분석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하는 일 등 대외활동도 테크기업 CEO의 주요 업무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이슈가 많아진 데다 포털과 게임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졌다”며 “외부 리스크 발생 시 정무적으로 대처하는 데 비이공계 출신 CEO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