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광화문 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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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광화문 글판](https://img.hankyung.com/photo/201803/AA.16135614.1.jpg)
해마다 봄은 오지만 이를 대하는 마음은 늘 새롭다. 올해는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과 ‘튀어오르는 몸’으로 새 봄을 맞는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광화문 글판은 1991년부터 줄곧 희망을 노래했다. 첫 문구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 다시 찾자’도 가난을 이기자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는 감성적인 시를 활용해 위안과 용기를 동시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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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 실패한 가장은 시내버스 뒷좌석에서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실의에 빠진 젊은이는 ‘푸른 바다에는 고래가 있어야지/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정호승 ‘고래를 위하여’)에서 용기를 얻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꼽힌 문구도 희망과 사랑의 시구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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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시로 뽑힌 김광규의 ‘오래된 물음’은 39행짜리 장시다. ‘누가 그것을 모르랴/ 시간이 흐르면/ 꽃은 시들고/ 나뭇잎은 떨어지고’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래도 살아갈수록 변함없는/ 세상은 오래된 물음으로/ 우리의 졸음을 깨우는구나’에서 분위기를 바꾼 뒤 라일락과 아이들의 생명력으로 세상의 봄을 밀어올린다.
‘보아라/ 새롭고 놀랍고 아름답지 않느냐/ 쓰레기터의 라일락이 해마다/ 골목길 가득히 뿜어내는/ 깊은 향기/ 볼품없는 밤송이 선인장이/ 깨어진 화분 한 귀퉁이에서/ 오랜 밤을 뒤척이다가 피워낸/ 밝은 꽃 한 송이/ 연못 속 시커먼 진흙에서 솟아오른/ 연꽃의 환한 모습’….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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