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이애리 씨가 한경갤러리의 초대전에 출품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화가 이애리 씨가 한경갤러리의 초대전에 출품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예쁜 꽈리는 행운과 복, 다산을 상징한다. 어린 시절 고향 장독대나 담장 밑에 심어진 꽈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살짝 벌려 안에 있는 열매를 씹으면 새콤달콤 쌉싸름한 맛이 그만이다. 한국화가 이애리 씨(49)는 국내 화단에서 유일하게 이런 꽈리에 덧씌워진 상징적 이미지를 화면에 녹여내고 있다.

‘꽈리 작가’로 잘 알려진 이씨가 26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시작했다. 숙명여대에서 처음으로 한국화 분야 박사를 취득한 그는 한국미술대전 최우수상과 한국국제교류전 우수작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수차례 입상하며 현대적 수묵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과 유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해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동양 미술이론에 밝을 뿐 아니라 고교 졸업 후 붓을 놓은 적이 없으니 그림과 동행한 30년 세월이 무르익어 꽈리 꽃과 열매로 빛나고 있다.

다음달 15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의 주제는 ‘꽈리와 행운의 미학’. 꽃이 만발한 모습과 호롱불처럼 생긴 열매를 시어(詩語)처럼 화면에 녹여낸 근작 20여 점을 걸었다. 겨울을 헤쳐온 사람들의 위축된 마음을 주홍빛 꽈리로 위무하고 행운과 축복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씨는 작년 가을 서울 남산을 비롯해 길동 생태공원, 봉산, 청계천, 한강까지 꽈리 자생지를 여행하며 스케치한 것을 겨우내 작업했다. 경기 안양 작업실을 마련해 하루 14~15시간씩 복주머니를 닮은 꽈리를 그렸다. 전통 한지에 주묵(朱墨)을 칠해 주홍색이 배어 나오게 한 다음 흰색과 검은색을 덧입혀 꽈리 색깔을 우려냈다. 세필을 힘껏 잡고 꽃과 열매 하나하나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을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처럼 붓길에도 리듬감을 보탰다. 금방이라도 툭 하며 튀어나올 것 같은 꽃잎에서 삶의 몸짓을 읽어냈고, 켜켜이 내려앉은 씨앗에서 삶의 위안을 찾아냈다. 한국화의 뼈대에 꽈리의 살집을 접붙인 그의 화면이 발랄하게 빛나는 까닭이다.

이씨는 “2010년 초 작업실 인근 행상 노인의 꽈리에 사로잡혀 여태껏 작업하고 있다”며 “동심과 현실을 넉넉히 껴안으며 관조와 소유(所遊)의 가치를 담아내려 노력한다”고 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