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의 패러다임이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6일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가 수조원을 투입해온 치매 치료제 개발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최근 액소반트사이언스 등 내로라하는 바이오기업까지 줄줄이 임상에 실패했다. 기존 가설로는 완치제 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다.

14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로슈, 일라이릴리, MSD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치매 치료제 임상을 중단했다. 이들은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약물을 개발해왔다. 치매 환자의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가 뭉쳐진 덩어리 형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의학계는 이 덩어리들이 독성 물질을 배출하고 염증을 일으켜 신경세포를 손상시킴으로써 치매가 일어난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베타 아밀로이드를 없애도 치매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임상 결과가 나오면서 이 같은 가설이 흔들리고 있다. 일라이릴리의 ‘솔라네주맙’, MSD의 ‘베루베세스타트’가 대표적이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베타 아밀로이드는 다른 요인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더라도 근본적인 치료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업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벤처기업 알렉터는 면역세포인 마이크로글리아를 활용해 뇌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치료제를 개발, 지난달 미국 제약사 애브비로부터 2억2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제약사들은 천연물을 활용한 생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환인제약은 당귀, SK케미칼은 백두옹으로 임상을 했으나 성과가 나오지 않아 중단했다. 광동제약과 일동제약은 각각 현삼과 멀구슬나무 열매 천련자 성분을 활용해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메디포스트와 차바이오텍 등은 새로운 신경세포를 불어넣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달아 치매 완치제 개발에 실패하면서 발병 시기와 진행 속도를 늦추는 약물로 연구개발이 집중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세계 치매 환자는 2030년 7500만 명, 치료제 시장은 2조달러(약 2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으로만 연간 30억달러(약 3조원) 이상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임락근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