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황청의 최고 행정조직인 쿠리아를 질타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역시 쿠리아 구성원들에게 또 다시 쓴소리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 바티칸 사도궁 모인 추기경, 주교 등 쿠리아 고위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탄 연설에서 쿠리아 내 파벌주의의 폐해와 야심과 허영심으로 타락하는 일부 관료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교황, 쿠리아에 또 쓴소리…"개혁의 적, 순교자 아닌 배신자"
교황은 "로마를 개혁하는 것은 칫솔로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청소하는 것과 같다"며 "인내와 헌신,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교황은 "쿠리아 내 많은 이들이 능력있고, 충성스럽고, 성스럽다"며 "반면, 일부는 교황청의 비효율과 시대에 뒤떨어진 관료조직을 개혁하기 위해 선택됐으나 그들에게 맡겨진 책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야망과 허영으로 타락하곤 한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이런 사람들이 '고상하게' 해고된 뒤엔 자신들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스스로 시스템의 희생양이라고 허위 주장을 펼친다"며 개혁을 방해해 해임된 사람들은 순교자 행세를 하는 대신에 '반역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 쿠리아에 또 쓴소리…"개혁의 적, 순교자 아닌 배신자"
특정한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터라 교황의 이날 발언이 올해 이뤄진 교황청 고위 관료들의 석연치 않은 퇴출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교황청은 지난 6월 교황청의 회계책임자 리베로 밀로네가 자진 사퇴했다고 밝혔으나, 밀로네는 사퇴 몇 달 뒤에 이탈리아 언론에 자신이 교황청 고위 성직자의 불법 행위 가능성을 조사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낸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교황청은 이에 대해 "밀로네가 이끄는 회계팀이 권한을 넘어 외부 회사를 불법 고용, 교황청 관리들의 사생활을 조사해왔다"며 반박했다.

이어 교황청 은행격인 종교사업기구(IOR)의 부행장이 지난 달 말 전격 해임됐다.

또,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는 교황청 내 보수파 거두로 꼽히며 교황과 충돌해온 게르하르트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도 갑작스레 자리에서 물러나는 처지가 됐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쿠리아 고위 성직자들을 상대로 한 연례 성탄 인사에서는 쿠리아 관료들이 '정신적인 치매'를 앓으며 위선적인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 작년 성탄 연설에서도 개혁에 저항하는 일부 세력을 비판하는 등 즉위 후 매년 쿠리아 구성원들을 상대로 한 성탄 인사에서 질책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