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약학대는 옛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밖에 오토바이크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은 베트남 대학가의 흔한 풍경이다.  /박동휘 기자
하노이약학대는 옛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밖에 오토바이크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은 베트남 대학가의 흔한 풍경이다. /박동휘 기자
지난달 하노이에 문을 연 V-KIST(베트남-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금동화 원장은 베트남 과학계에서 세 번째로 월급을 많이 받는 과학자다. 한 달에 900달러(약 98만원)로 장관급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베트남 정부로선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이지만 ‘글로벌 물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하노이 코참이 제공하는 현지 물가표에 따르면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142㎡ 면적의 아파트 월 임차료가 380만원에 달한다.

돈·인프라 부족… 인재 못 키우는 베트남 정부의 고민
금 원장의 사례는 베트남 정부가 안고 있는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베트남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중국만 해도 풍부한 ‘곳간’을 무기로 해외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지만 재원이 부족한 베트남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학 등 고등교육의 질(質)이 글로벌 수준에 못 미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글로벌 1000위권 안에 포함된 베트남 대학이 한 곳도 없을 정도다.

베트남 정부는 2015년 월드뱅크와 공동으로 ‘베트남 2035 비전’을 발표했다. 1986년 ‘도이모이’로 불리는 경제개혁을 단행해 시장경제에 합류한 지 30년을 맞아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겠다는 선언문이었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자국의 미래를 ‘현대화된 산업국가’로 그렸다. 6대 선결과제 중 국가 주도의 경제를 민간 주도로 바꾸는 것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두 번째 핵심 조건은 ‘인재’에 관한 것이었다. 기술혁명과 혁신을 가져올 인적자원을 어떻게 양성하느냐가 베트남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란 의미다.

2년이 지난 요즘, 베트남 정부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고급 인재를 키워낼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가장 큰 난관은 ‘돈’이다. 하노이 시내 주요 대학을 ‘호락 하이테크 파크’라는 산학 협력단지로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수년째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V-KIST만 해도 막상 출범하긴 했지만 ‘인재 풀(pool)’이 너무 작다는 난관에 처했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대졸 초임 근로자의 월급이 820만동(약 40만원)에 불과한 상황에선 인재를 모으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의 ‘고급 두뇌’들이 제조업을 기피한다는 점도 베트남이 겪고 있는 딜레마 중 하나다. 이영기 베트남 국민경제대 교수는 “베트남 청년들 사이에선 좋은 대학을 나와 부동산 기업에 가거나 고급 카페를 차리는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라며 “양질의 일자리가 드물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의 주요 그룹은 대부분 국영 기업이거나 부동산 관련 업체들이다. 베트남 부동산 컨설팅업체의 대표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건 베트남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외국인 투자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산업 고도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시장만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가다 보니 인재들이 억대 연봉까지도 제시하는 부동산 쪽으로만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 대학들이 글로벌 수준에 맞는 교육 인프라를 못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인재육성에 걸림돌이다. 서울대 격인 베트남국가대(VNU)의 세계 랭킹(CSIC 기준)은 1507위다.

베트남 1위 대학으로 분류된 하노이과학기술대(1101위)조차 1000등 안에 못 들어간다. 태국, 인도네시아만 해도 1000위권 대학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준비 중이지만 대학에 제대로 된 교재조차 없는 터라 대부분 탁상공론에 그치고 있다. 교육분야 공적개발원조(ODA) 프로젝트 전문가인 김봉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과 베트남 간 관계가 더욱 발전하려면 국내 기업과 대학이 인재양성 쪽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