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씁쓸한 '아니면 말고!' 세태
요즘 근거 없는 소문이나 인터넷 글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있다. 두 달 전쯤 인터넷을 달군 소위 ‘240번 시내버스 사건’은 죄 없는 버스 기사 한 명을 거의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갔다. 가수 김광석 씨와 그 딸을 일부러 죽게 했다는 혐의로 크게 비난받은 김씨의 부인은 며칠 전 경찰 수사 결과 무혐의로 발표됐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힙합 가수 타블로 또한 집요하게 제기된 학력위조 혐의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한 바 있다. 30만 명의 회원을 둔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라는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타블로가 미국 스탠퍼드대를 나왔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다.

다행히 이들은 대부분 혐의를 벗었다. 김씨의 부인은 아직도 다툼이 진행 중이지만, 240번 버스 기사는 잘못이 없다고 판명됐다. 타블로 사건은 재판을 통해 스탠퍼드대 졸업 사실을 확인받고 그동안 악의적으로 혐의를 제기한 사람들은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문제는 이처럼 혐의가 벗겨지더라도 당사자의 피해가 모두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40번 버스 기사는 극도의 심리 불안에 시달렸다. 타블로는 본인은 물론 심지어 가족까지 악플에 시달려 직장을 그만두는 등 피해를 봤다.

게다가 이처럼 한번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대로 무언가 석연하지 않은 면이 있기에 그런 의혹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평판을 깎아내리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가 일어나곤 한다. 이런 경우는 폭로에 대응해 충실히 해명하더라도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전투구 형태로 몰아가기 십상이다. 심지어는 국가 수사기관도 가끔 혐의를 슬쩍 흘리거나 무리한 기소를 해서 망신을 주기도 한다. 재판 결과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그동안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는 힘들다.

근거 없는 의혹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독일에서는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인터넷 사이트에 막대한 벌금을 물리는 법안이 통과됐다고 한다. 명백한 가짜 뉴스는 아니더라도 근거 없는 의혹 제기 역시 이제는 사회적 신뢰 구축에 큰 해(害)가 되고 있다. 언론의 자유라는 면도 있어서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율적인 규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오세정 < 국민의당 국회의원 sjoh660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