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사이클’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복병을 만났다. 우선 국내외 신규 공장 증설이 잇따르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석유 제품인 나프타 중심의 국내 업계가 경쟁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이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국내 업체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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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과잉 우려되는 신·증설 경쟁

세계 최대 화학업체인 미국 다우듀폰은 연간 15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에탄크래커(ECC) 공장을 지난 9월부터 가동하고 있다. 메이저 정유회사인 엑슨모빌과 인도라마도 연말께부터 각각 150만t과 37만t 규모의 ECC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내년 말까지 미국에서 가동 예정인 에틸렌 공장 규모는 903만t으로 국내 업체들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904만t)과 맞먹는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비닐 같은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여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로 유화 제품 수요가 늘면서 에틸렌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앞다퉈 국내외에서 신·증설 경쟁이 펼쳐지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작년 10월 LG화학(23만t)을 시작으로 롯데케미칼(20만t) 한화토탈(31만t) 대한유화(33만t) 등이 앞다퉈 설비 늘리기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의 중국 내 합작법인인 중한석화도 지난달 7400억원을 투자해 후베이성 공장의 생산 규모를 80만t 늘리기로 했다. 중국 내 에틸렌 자급률이 60% 수준에 그쳐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미국 제품이 아시아로 유입되면 공급 과잉 문제가 불거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적은 잊어라… 석유화학 위협하는 3대 복병
유가 오르면 국내 기업 타격 불가피

올해 2분기 배럴당 40달러에 그친 국제 유가가 오르고 있는 것도 국내 석유화학업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국내 업체들은 석유 제품인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NCC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셰일가스에서 에틸렌을 뽑아내는 ECC 방식을 주로 쓴다. 저유가가 장기화될수록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국내 업체에 유리한 구조다. 올해 나프타 가격은 t당 400달러 수준으로 고유가 시절이던 2013년(900달러)의 절반에 그친다. 업계에선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으면 석유와 가스 대비 원유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업체들이 주로 수입해 쓰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58달러를 웃돌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2년 만에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 난방유 소비가 늘어나는 4분기는 통상 유가가 오르는 시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감산 기간을 연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앞으로 국제 유가는 상승세를 탈 것으로 전망된다.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년에 국영 석유 기업인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유가 오름세를 점치게 하는 요인이다.

확산되는 무역규제

중국과 미국이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9월23일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과 코오롱플라스틱 등 국내 업체가 생산한 폴리옥시메틸렌(POM)에 대해 덤핑 판정을 내리고 6.2~34.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POM은 절연성과 내열성이 좋아 자동차 부속품과 건축자재로 두루 쓰인다. 지난해 POM 중국 수출 규모는 8000만달러 수준이다.

중국은 지난 6월부터 스타이렌모노머(SM)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벌이고 있어 관세 부과가 임박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SM은 플라스틱과 합성고무에 쓰이는 원료다. 작년 한화토탈과 롯데케미칼 등 국내 업체들의 SM 중국 수출액이 12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반덤핑 관세 부과 시 국내 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도 한국산 페트(PET) 수지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은 올해 초에도 한국산 에멀전 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ESBR)와 가소제 등에 반덤핑 예비 관세를 부과하는 등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인도 역시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나서는 등 무역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