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투자자 보호와 예금자 보호는 분리해야
한국에서 가장 흔한 자원은 무엇일까. 바로 ‘돈(money)’이다. 격세지감이 있지만 현재의 연 1%대 낮은 은행금리, 수익성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동성은 어느덧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자원이 돈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돈이 귀하고 사람, 즉 인력이 흔한 나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 대한 가격인 금리가 연 10%대를 넘는 고금리 사회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돈에 대한 가치는 떨어졌다. 주목할 것은 10%대 금리에서 1%대 금리로 떨어지는 돈의 가치 하락속도가 세계 주요국가 중 가장 가파르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한국에서 금융산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다. 금융산업이 우리에게 가장 흔해진 자원인 돈을 가지고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돈이 부족하고 인력이 남아돌던 시절에는 제조업, 즉 인력을 가지고 돈을 만들던 제조업이 중요했다. 그러나 고임금으로 인해 제조업의 경쟁력이 하락한 지금은 돈을 가지고 돈과 일자리를 만드는 금융산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금융산업은 왜 발전하지 못하는가.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못한 금융산업의 경쟁력’이란 언론 발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금융에 대한 규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촘촘하다. 왜 이같이 한국 금융산업에는 규제가 강력하게 됐는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저금리하에서 돈을 벌기 힘들어진 우리나라에서 예를 들어 ELS(주가연계증권) ELW(주식워런트증권) 등 ‘EL~’란 새로운 상품이 등장한다. 여기에 투자하면 대박이 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투자자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투자는 과열을 빚게 되고 가격 폭락시 많은 투자자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점차 대두된다. 그러면 언론이 끼어들어 왜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느냐고 비판하기 시작한다. EL~의 경우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이 매수한 반면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매도를 하고 있어, 가격 폭락시 개미들의 투자금이 외국인에게 넘어갈 것이란 등의 분석 기사들을 쏟아낸다. 이에 부담은 느낀 금융감독원은 실태조사에 나서고, 이후 증권사들의 해당 EL~ 판매에 대한 창구조사가 이뤄진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인데, 나중에 문제가 터질 것을 우려하는 금융당국은 해당 EL~ 자체의 발행을 금지해 버리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해당 공무원으로서는 문제가 터져 언론의 집중포격을 받으면 문책을 받게 되므로, 문제의 소지를 없애버리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으며 오늘날 가상화폐 규제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돼서는 금융산업 발전은 물 건너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 보호’와 ‘예금자 보호’를 분리하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모든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정부의 보호는 어디까지나 ‘예금자 보호’에 그쳐야 하며 모든 종류의 ‘투자’는 투자자 개인이 자신의 판단과 책임하에 투자하는 것이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투자상품’의 개발이 증권사 등에 의해 충분히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또 이들 상품의 판매가 투자자들에게 상품의 위험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상태의 ‘불완전 판매’가 되지는 않았는지 등 불법행위만 감시감독하는 데 국한해야 한다.

언론 또한 적법하게 개발돼 적법하게 판매된 금융상품 판매로 인한 투자손실 책임을 정부에 묻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언론의 보도는 쏠림현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는 투자자들 개인에 대한 경각심 고취로 국한돼야 한다. 주식투자에서 손실을 본 사람들이 무서워서 주식시장 자체를 막아버리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언제까지 계속하려 하는가.

하태형 < 수원대 특임교수·전 현대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