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투명한 안보 원칙 뒤집은 청와대
“한·미 간 공조는 물샐틈없습니다.”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지난 23일 밤 북한 공해상으로 출격한다는 사실을 미국 측으로부터 언제 통보받았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안보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걸 이해해 달라”며 이렇게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소집을 지시한 시점이 B-1B 랜서 출격 전인지 후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측 통보 시간과 NSC 소집 지시 시점이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상황 관리 아래 미국의 무력시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데 필요해서다.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미국 뉴욕에서 돌아온 지 하루도 안 돼 미국은 B-1B 랜서를 북방한계선(NLL)까지 전개했다. 청와대는 “미국에 있는 동안 한·미 간 긴밀한 협의가 있었다”고 했지만, 출격 결정을 언제 알았는지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 주재 NSC 전체회의가 정해진 시점도 청와대 관계자 간 말이 엇갈렸다. 한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예정돼 있었다”고 했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토요일(23일) B-1B 랜서 전개 시점쯤에 NSC 소집 통보가 이뤄졌다”고 했다. 미국이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B-1B 랜서 출격을 일방 통보하자 문 대통령이 NSC를 긴급 개최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은 속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청와대의 이 같은 태도는 그동안 강조해온 ‘투명한 안보’ 기조와도 다른 모습이다. 청와대는 북한이 문 대통령 취임 후 5일 뒤인 5월14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자 대응 과정을 분(分) 단위로 공개했다.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위기 상황을 노련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도 해석됐다.

국가 안보와 관련해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독자적인 무력시위를 보면 청와대가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미 양국 간 어떤 공조가 있었는지 국회와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는 야당 지적을 정치 공세 정도로 치부해서는 곤란할 듯하다.

조미현 정치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