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보훈’에서 ‘I·SEOUL·U’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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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오’해서 무슨 뜻인지 잘 안 다가와
K9 자주포 사고, 북한 핵실험 등 ‘차가운 현실’
디자인만으로는 알아보기 힘든 ‘보훈처의 정신’
K9 자주포 사고, 북한 핵실험 등 ‘차가운 현실’
디자인만으로는 알아보기 힘든 ‘보훈처의 정신’

보훈처에서 4일 오전 발송한 보도자료를 보고 ‘따뜻한 보훈’이라 적힌 보랏빛 포스터를 몇 분 동안 쳐다봤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떠오른 또 다른 ‘낯선 브랜드’가 있었다. 서울시의 브랜드 ‘I·SEOUL·U(아이 서울 유)’였다.
‘따뜻한 보훈’과 ‘I·SEOUL·U’는 닮았다. 우선 디자인에 담긴 정신이 너무 심오해서 처음 봤을 때 무슨 뜻인지 잘 다가오지 않는다. ‘I·SEOUL·U’의 경우 2015년 10월 발표 당시 외국인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콩글리시(konglish)’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나 공존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였다. 게다가 “가수 아이유가 서울을 점령했다”를 비롯해 “I·SEOUL·U의 원뜻은 전세금을 확 올려버릴 겠다는 뜻”이란 비아냥, 부채가 많은 인천시를 빗대 “I Incheon You=널 빚더미로 만들어 주겠어” 등 온갖 패러디가 쏟아졌다.
브랜드 발표가 자칫 전시 행정 집착으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닮았다. 특히 보훈처의 경우 최근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K9 자주포 사고로 인한 장병 2명의 희생, 고조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 등 ‘차가운 현실’이 잇따르고 있다. 재향군인회는 ‘군 비리의 최종 보스’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전역군인 단체다. 역대 보훈처장들이 하나같이 취임 초 내세운 게 재향군인회 개혁일 정도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실상 거의 손을 못 쓰고 있는 실정이다. K9 자주포 사고의 경우 보훈처에서 빈소에 조화 하나 보내지 않아 빈축을 샀다.

하지만 해당 브랜드를 디자인한 관계자가 아닌 이상, 보훈처의 ‘따뜻한 보훈’ 브랜드를 보고 보훈의 정신을 느낄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브랜드의 힘은 실천에서 나온다. 그래야 각인될 수 있다.
하필이면 보훈처의 브랜드 발표 전날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 한 번 보훈처의 브랜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