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금융산업에 '메기'를 더 풀어놔야
필자가 재정경제부에서 근무하던 시절인 1990년대 금융당국 수장들 사이에 회자된 이야기가 ‘메기론’이다. 미꾸라지가 사는 논에 메기 몇 마리를 풀어 놓으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미꾸라지가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이야기다.

당시에 메기는 곧 개방과 경쟁의 아이콘이었다. 이 시기에는 규제완화로 금융회사들의 업무 범위가 확대됐고 신규진입과 해외진출도 활발했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속페달을 밟은 탓인지 몇 년 못 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 이로 인해 많은 금융회사가 문을 닫자 메기론을 외치던 금융당국은 큰 곤욕을 치렀다. 외환위기 이후 감독정책의 방향이 개방과 경쟁에서 규제와 감독 강화로 바뀌게 된 이유다.

2000년 이후에도 신용카드사태(2003), 글로벌 금융위기(2008), 저축은행 사태(2011), 대규모 개인정보유출사고(2013) 등 일련의 금융사고와 위기는 금융산업 전반에 규제와 보신주의를 더욱 만연시켰다. 그 결과 지난 십수 년간 국내 금융산업에는 역동적인 변화와 혁신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터넷 강국인데도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은행의 도입도 늦었다. 중국이 2015년 초에 인터넷 은행을 출범시킨 데 비해 우리는 2007년에 도입을 추진했으나 당시 은산(銀産)분리와 금융실명제 문제에 부딪혀 10년이 지난 올해에야 출범하게 됐다.

하지만 뒤늦게 출범한 인터넷 은행의 최근 돌풍은 금융산업에 작지만 강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영업을 개시한 지 2주 만에 가입자가 200만 명을 돌파하는 흥행대박을 이뤘고 케이뱅크(K뱅크)의 중금리 직장인 신용대출은 수요폭증으로 재원이 바닥나 대출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올해 금융권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생산성 향상이나 경영혁신의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으로 핀테크 업체와 인터넷 은행이 몰고 올 새로운 형태의 경쟁은 기존 금융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어 미래의 수익전망도 어둡게 한다. 그동안 은행의 높은 대출 문턱에 좌절하고 제2금융권의 고금리에 시달려온 서민들에게는 인터넷 은행발(發) 대출금리 인하 경쟁과 서비스 개선이 가뭄에 단비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을 금융부문에서 뒷받침하려면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을 통해 금융자산의 수익률을 높이고 대출금리 인하를 통해 가계의 금융비용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 현재 가계부채 규모는 약 1400조원, 가계 금융자산 규모는 약 2500조원으로 추정된다. 고령화 시대 국민의 노후 연금자산(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규모도 약 100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금융선진국인 미국, 영국, 호주는 연금 자산운용 수익률이 연 8~12% 수준에 달한 데 비해 국내 연금자산 수익률은 4% 수준에도 못 미쳤다. 국내 금융종사자들이 수익률을 못 내는 주된 이유는 과도한 규제와 간섭 때문이다. 규제완화와 경쟁촉진을 통해 대출금리 부담을 1%포인트 내리고 금융자산의 수익률을 1%포인트 올리면 연간 40조원 상당의 가계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는 월 300만원짜리 일자리를 100만 개 이상 만드는 효과(36조원)보다 크다.

금융선진국일수록 금융이 고용과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다. 영국은 금융산업의 산업 내 부가가치 비중이 10%에 달하는 데 비해 한국은 이 비중이 계속 감소해 6% 수준도 안 된다. 영국이 금융선진국과 핀테크 강국이 된 것은 금융당국이 감독의 최우선 목표를 혁신과 경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핀테크 업체들은 과도한 규제로 국내에서 영업조차 하기 힘들어 해외에서 일감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규제완화를 통해 하루빨리 금융산업에 제2, 제3의 메기를 키워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탑재한 ‘핀테크 메기’들이 기존 금융산업에 혁신을 불러일으킨다면 금융분야에서 연 40조원 가계소득 창출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금융감독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