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나온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은 유권자들의 감동도, 사회적 울림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제1 야당인 107석 공당(公黨)의 쇄신 강령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론 반응도 약했다. 정부가 ‘부자 증세안’과 ‘주택시장 대책’을 같은 날 함께 발표하는 바람에 뉴스 비중에서 밀린 탓으로 보기 어렵다. ‘보수 본류’를 표방하는 자유한국당의 현주소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당이 내놓은 ‘혁신선언문’에 치명적 하자나 자유민주주의 기반의 보수 원류를 부정하는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때부터의 오류와 반성, 앞으로의 각오를 담은 전문(前文)과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라는 4개의 가치 강령은 ‘부디, 이만큼만이라도 제대로만 이행한다면…’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서민중심 경제’처럼 생경한 레토릭의 지향점도 있어서 경제민주화로 ‘좌파 진보’와 경쟁까지 벌여온 포퓰리즘의 구각을 깨려는 의지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되는 대목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4개 강령으로 “인적 쇄신을 이루고, 자유 대한민국 수호와 발전을 열망하는 국민만 보겠다”고 다짐한 것에서 한국 보수의 재기 가능성을 한번 더 기대해보겠다는 유권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패배한 뒤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분당 소동 이후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기까지 보수가 지리멸렬한 배경과 원인은 새삼 거론할 것도 못 된다. 보수를 표방하면서도 좌편향 정책을 주저없이 내놨고, 곳곳의 반(反)법치와 포퓰리즘을 막기는커녕 그 경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를 들여다보면 반보수 행보는 가짓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경제와 안보를 함께 좇으며 강한 미국을 재건한 ‘레이거노믹스’도, 수십 년 묵은 영국병을 고친 ‘대처리즘’도 말 그대로 딴 나라 얘기였던 지난 10년이었다. 법치주의, 기업과 시장경제, 자유와 개방의 참가치를 몰랐고 외면했다. 공산주의 붉은 제국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낸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보수가 일궈낸 성장과 국가 발전, 인류의 진보를 인식도 못한 한국의 보수였다.

거창하게 갈 것도 없다.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으로 시작하는 마이클 하워드 전 영국 보수당 대표의 16개 보수주의 강령 ‘나는 믿는다’(2006년)라도 제대로 읽고 실천하려는 국회의원이 지금 한국당에 몇이나 될까. 짝퉁 보수, 말로만 혁신으로는 안 된다. 시간도, 기회도 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