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기관 외면하던 BBB급 회사채도 100% '청약'
기관투자가들이 외면했던 신용등급 ‘BBB+’ 이하 기업이 연이어 공모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고 있다.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경기 성장) 현상에 회사채 시장이 달아오르자 비우량등급 회사채에도 온기가 퍼진 결과다. 신용위험에 가려져 있던 고금리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다.

‘BBB급’ 기업 연이어 발행 성공

[기업 재무] 기관 외면하던 BBB급 회사채도 100% '청약'
지난달 26일 신용등급 ‘BBB+’인 AJ네트웍스는 2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해 벌인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모집금액을 모두 채우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모집금액을 웃도는 330억원의 매수주문이 들어오자 발행금액을 29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달 20일과 21일 각각 수요예측을 한 한진(신용등급 BBB+)과 아시아나항공(BBB)도 투자자 확보에 성공했다. 한진은 700억원 모집에 103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300억원 모집에 480억원어치 수요가 몰렸다. 두 회사가 회사채 모집금액을 채운 것은 2012년 수요예측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뜻밖의 흥행에 힘입어 당초 계획보다 많은 480억원어치의 채권을 찍었다.

‘BBB급’(신용등급 BBB-~BBB+) 회사채는 투자적격 등급 중 가장 신용위험이 높아 기관들의 기피 대상이었다. 최소 A-등급 이상만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워둔 기관이 대부분이다. 소매판매(리테일) 창구를 통해 개인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는 증권사 또는 BBB+ 이하 채권을 주요 투자대상으로 삼는 ‘분리과세 하이일드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정도만 수요처 역할을 해왔다. 이들조차도 신용등급 하향 추세가 뚜렷했던 최근 4년 동안에는 BBB급 회사채 투자를 크게 줄였다. 불과 두 달 전 중견건설사 한양(BBB+)이 실적 개선과 연 7%대 금리를 앞세워 회사채 시장 문을 두드렸지만 한 곳의 기관도 확보하지 못했을 정도다.

[기업 재무] 기관 외면하던 BBB급 회사채도 100% '청약'
하지만 회사채 시장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회사채 수요예측에 들어온 기관 자금은 총 46조5000억원으로 수요예측 제도 시행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기업 실적과 주요 경기지표가 개선 추세를 나타내고 시장금리도 안정세를 보인 덕분이다. 투자원금 회수에 대한 불안감이 줄면서 비우량 채권의 고금리 매력도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진(연 5.071%)과 아시아나항공(연 5.8%)이 이번에 발행한 1년6개월물의 금리는 연 5%대다. 시중은행 2년 정기예금(최고 연 2.05%)의 두 배 이상 된다.

IPO 열기도 ‘한몫’

뜨거운 기업공개(IPO) 시장 분위기도 비우량 기업의 채권 발행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모주 청약 기회를 얻으려는 하이일드펀드들이 비우량 회사채를 사모으고 있어서다. 하이일드펀드는 자산의 45% 이상을 BBB+ 등급 이하 채권이나 코넥스 기업 주식에 투자하면 공모주 배정물량의 10%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다. 올 상반기 IPO 공모 규모는 4조8415억원(상장일 기준·코넥스 상장 제외)으로 2010년 이후 최대다.

지난 4월 회사채 발행에 나섰던 아주산업(BBB+)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 ‘최대어’ 넷마블 공모주 청약을 노린 하이일드펀드 자금 덕분에 모집금액 450억원을 성공적으로 조달했다. 넷마블은 5월 역대 2위 공모금액(2조6617억원) 기록을 세우며 유가증권시장에 데뷔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AJ네트웍스 회사채 수요예측 때도 적지 않은 금액이 하이일드펀드에서 흘러들어왔다”며 “실적악화 우려가 덜한 BBB급 기업을 중심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