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24일 소득세와 법인세 ‘부자 증세’에 대한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전 국민과 기업의 1%가 안 되는 ‘슈퍼리치 증세’라는 점을 적극 부각, ‘1 대 99의 대결 프레임’을 만들어 지지기반인 서민·중산층의 이탈을 막고 ‘세금폭탄’이라는 야당 반발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과세표준 2000억원이 넘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0.019%, 5억원을 넘는 개인은 전 국민의 0.08%라는 점을 적극 홍보하는 이유다.

◆프레임 전쟁 나선 여권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정부의 증세,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라며 “부자 증세? 대한민국 1% 증세? 알맞은 이름을 붙여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민주당은 부자 증세를 ‘슈퍼리치 증세’와 ‘핀셋 증세’ ‘대한민국 1% 증세’라고 명명했다. 김진표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고소득층, 고액재산가, 부동산 등 재산이 많은 사람이 더 부담해야 한다”며 “중산층, 소상공인, 저소득봉급자 등에게는 세제상 혜택을 더 줘야 옳다”고 말했다. 서민과 중산층은 증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태년 정책위원회 의장은 한발 더 나아가 “초우량기업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랑 과세’, 부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존경 과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 대신 ‘과세’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반발이 예상되는 대기업과 부유층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2년 집권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부유세’를 추진했다가 유명 인사들이 ‘세금 망명’에 나서는 역풍에 지지율이 급락했던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이 ‘네이밍 전쟁’에 나선 것은 과거 수차례 경험에서 얻은 학습효과의 결과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시장 안정과 소득 재분배를 명분으로 시행한 종합부동산세 인상이 ‘세금 폭탄’ 프레임에 갇혀 고전한 아픈 경험이 있다. 거꾸로 야당 시절 새누리당의 우선 추진 법안을 ‘MB 악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휴대폰 도청법’ 등으로 명명해 재미를 봤다.

◆속도 내는 여, 반발하는 야

민주당은 1 대 99의 대결 구도로 몰아간 게 우호적인 여론(리얼미터 조사에서 86.5% 찬성)으로 나타나자 부자 증세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민주당과 정부는 27일 세제개편 당정 회의를 연다. 추미애 대표가 지난 20일 ‘증세 군불’을 땐 지 1주일 만이다.

이에 야당은 ‘세금 폭탄’이라며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입장은 갈린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가공할 세금 폭탄 정책에 대해 관계 장관이 말 한마디 못하고 벙어리 행세를 하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추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정부가 일부 초고소득자에게만 한정해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계층 갈등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일부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증세는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국민에게 양해를 얻어 복지 수준을 결정하고 나면 재정 부담 수준은 자동으로 결정된다”며 대선 때 약속한 ‘중복지 중부담’을 강조했다.

이재창 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