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재산신탁 5년새 100조↑…로펌들, 신탁시장서 '한판 승부'
재산 상속 업무가 법무법인(로펌)의 중요한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부모의 재산 배분과 관련해 자식들 간 소송이 증가하는 데다 재산을 신탁하려는 수요도 커지면서 로펌에 자문하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빠르게 진행 중인 고령화와 각박해진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주요 로펌은 조직과 인력을 보완하면서 상속과 가사 분야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급증하는 상속 분쟁

18일 법원에 따르면 부모 재산에서 자신의 몫(법정 상속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공동상속인인 형제자매를 상대로 낸 유류분(遺留分) 소송이 지난해 1091건에 달했다. 연간 기준 1000건을 넘은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5년 전인 2011년(471건)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유류분은 상속 재산 중 직계 존·비속 등 상속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일정 상속분이 돌아가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몫이다. 민법은 배우자와 자녀 등 직계 비속은 법정 상속분의 절반, 부모 등 직계 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불평등한 유산 상속을 막기 위한 장치다.

한 대형 로펌 가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유류분 재판 건수는 증가하고 소송 가액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며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유산을 두고도 가족 간 법적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식이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초 A씨는 사망 직전 10억원대 전 재산을 부인에게 남겼다. 자식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인 A씨를 제대로 봉양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씨의 자식은 어머니를 상대로 유류분을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가족 다툼 막는 재산 신탁

가족 간 법적 다툼을 사전에 막기 위해 신탁을 찾는 이도 늘고 있다. 신탁은 고객이 금융회사를 믿고 돈이나 재산(부동산·주식 등)을 맡기는 서비스다. 해당 금융회사는 예금·주식·채권·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이용해 돈을 관리한다. 재산 신탁은 보통 로펌에 법률 자문을 하고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한다. 재산 신탁 잔액은 2011년 말 244조3950억원에서 지난해 말 346조7812억으로 5년 새 100조원 이상 늘었다.

대표적인 재산 신탁은 유언대용신탁이다. 계약자가 생전에는 재산 관리에 따른 이익을 받다가 사망하면 자녀 등 타인에게 운용 수익은 물론 재산까지 양도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신탁 계약을 맺으면 상속자와 피상속자 간 합의가 있어야 계약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상속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상속받는 자녀가 미성년이거나 장애가 있으면 상속 재산 운용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가령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B씨는 치매가 심해지기 전에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해 재산의 절반인 수익형 부동산은 아내에게 넘겨주고 나머지 재산은 자녀에게 상속했다. 다만 자산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 아내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주변의 꼬임에 전부 날릴 수 있어 아내가 사망하기 전까지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걸었다.

로펌의 신탁업 업무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올해 관련 법을 개정해 로펌에도 신탁업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로펌이 신탁상품 관련 컨설팅만 해줄 수 있지만 법이 개정되면 직접 신탁상품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로펌 관계자는 “유언장 작성과 보관, 상속세 납부 등 사후 재산관리를 전담하는 신탁 전문로펌도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성 강화하는 로펌

주요 로펌은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김앤장은 연초 신탁, 금융거래, 상속, 조세 등 전문변호사 20여 명으로 구성된 신탁팀을 출범시켰다. 2012년 사내에 상속신탁연구회를 두고 가사·상속, 신탁, 가업승계 부문을 강화한 바른은 유언대용신탁 자문 부문에서 선두주자로 꼽힌다. 정인진, 김상훈 변호사가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율촌도 상속문제를 다루는 기업승계팀을 두고 있다. 정기적으로 고객대상 관련 세미나도 열고 있다.

지평은 지난 4월 상속·가사·가업승계팀 내부에 노인법(Elder Law) 실무연구회를 마련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상속·증여 등의 세대 간 재산 이전부터 노인 권리까지 관련된 다양한 법률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광장은 지난해 기존 가사소송팀과 신탁팀을 개편해 신탁업무 분야를 보강했다. 화우도 서울가정법원장 출신인 김대휘 변호사를 중심으로 상속·가업승계·자산관리팀을 꾸려 송무부터 기업 경영권 승계까지 상속 관련 모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종도 상속, 유언, 가업승계 등을 담당하는 별도 조직을 두고 있다. 201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간 4조원대 유산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 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