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주역' 해병대, "흥남철수작전후 미래 대통령 태어났다"
"한국 대통령에 대한 흥미로운 스토리…장진호전투 희생 헛되지 않아"
文대통령 방미 계기, 미국 해병대 페이스북 '장진호 전투' 추모봇물
미국 해병대 페이스북이 6·25 전쟁 당시 가장 혹독했던 전사(戰史) 중 하나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 추모 분위기로 가득 찼다.

장진호 전투와 가족사가 맞물려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을 계기로 장진호 전투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장진호 전투의 주역이었던 미 해병대는 28일(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문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관련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는 문 대통령의 모습도 담았다.

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수 시간 후 관련 영상을 시청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미 해병 1사단이 장진호 전투를 통해 적(중공군 및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내면서 흥남철수작전을 가능케 해 문 대통령의 부모가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흥남철수작전) 3년 후 미래의 대통령(문재인)이 태어났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내용의 장진호 전투 관련 영상과 글이 게시되자 해병대 페이스북은 참전용사의 자녀들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수백 건의 댓글이 속속 올렸다.

로버트 메시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부친은 통신 임무를 담당했다면서 '통신이 없었다면 장진호에서 흥남까지의 철수는 재앙이었을 것'이라는 부친의 얘기를 전했다.

그는 올해 98세인 부친이 여전히 당시 경험했던 한국의 혹독한 추위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는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남편이 그 혹독한 겨울에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면서 "그는 지금 천국의 문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빌리 댄그로는 아버지 윌리엄 댄그로가 장진호 전투에서 포로가 됐다면서 부친은 33개월간의 포로생활 끝에 풀려났고, 지금은 병원에 있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앤드루는 부친이 장진호 전투 현장에 있었고,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 사방에서 출현하는 12만 명의 중공군에 의해 포위됐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로 추정되는 돈 스완슨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온이 0도에 가까웠고, 미 해병은 중공군에 의해 8대1로 수적으로 압도됐고 (철수작전은) 17일간 계속됐다"고 밝혔다.

리처드 라모럭스는 "여름에는 그렇게 뜨겁고, 겨울에는 그렇게 추운 곳은 보지 못했다"면서 "나는 당시 임진강 다리에 있었고, 이후 문산 남쪽으로 철수했다"고 말했다.

폴 쿤은 "한국은 가끔 '잊힌 전쟁'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많은 참전용사의 희생이 슬프게도 오늘날 잊혔다"면서도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장을 이뤘고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피난민 가족 출신의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흥미로운 스토리"라면서 "그것은 결국 그것(장진호 전투)이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국군 7개 사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 속에 2주 만에 극적으로 철수에 성공한 전투로, 미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 있다.

이는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했고, 당시 1만4천 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문 대통령도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흥남철수작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시하는 한편,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며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