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갑질 잡겠다"는 '슈퍼갑'의 탄생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에는 12개의 약속이 있다.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에 이어지는 두 번째 약속은 ‘공정한 대한민국’이다. 경제민주화 부문으로 ‘갑(甲)의 불공정 갑질과 솜방망이 처벌, 이제는 끝내겠습니다’라는 구호로 시작한다. 소위 ‘갑을(甲乙) 관계’를 시정하겠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슷한 취지로 2013년 5월 당내에 을지로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이 위원회가 새 정부에서 국가 차원의 범정부 을지로위원회로 거듭난다고 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갑’의 횡포를 국가 차원에서 단죄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을’을 국가가 지켜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은 누구일까. ‘갑’ 하면 재벌이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 대형마트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을’의 상징처럼 돼 있다.

세상엔 영원한 갑도 을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을’일지 모르지만 고용주로서 중소기업은 종업원에게는 ‘갑’이다. 대기업 역시 정치권력 앞에서는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감사원 등의 권력기관 앞에서도 대기업은 을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종업원 역시 언제나 을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고객으로서 식당 등 접객업소를 찾아가면 그 역시 ‘갑질’해대는 진상 손님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엔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누구와의 관계냐에 따라 위치가 뒤바뀌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역전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정은 무시한 채 무조건 갑질을 때려잡으려 하다간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대표적 ‘을’로 꼽히는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그렇다. ‘비정규직 제로(0)’를 추진하면 비정규직의 95%를 고용하고 있는, 또 다른 을인 중소기업이 죽어난다.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갑’이라는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납품 농민과 입점 영세사업자의 매출 타격으로 이어지고 마트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진 것도 그렇다.

편가르기식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

갑을 관계가 꼭 청산되고 배척돼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사실 가정, 회사, 국가 할 것 없이 사람 사는 곳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늘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좋은 대학과 직장을 가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갑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갑이 되기 위한 경쟁을 통해 개인도 사회도 발전한다. 고시에 매달리는 것도,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으려는 것도 모두 갑이 되기 위한 몸부림들이다.

이런 사정은 외면한 채 무조건 ‘갑=악(惡)’이요, ‘을=선(善)’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곤란하다. 사실 세상을 선악으로 나누는 것만큼 단순하면서도 위험한 발상은 없다. ‘내 편=선’, ‘상대방=악’으로 정의되는 순간부터 객관적 사실에 눈을 감고 합리적 사고도 실종된다. 내 편은 천사, 상대방은 악마가 되는 ‘천사 코스프레’의 이면에는 상대방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무관용이 숨겨진 경우가 적지 않다.

범정부 을지로위원회는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갑 중의 갑’을 총동원하는 셈이다. 그런 ‘슈퍼갑’이 우리 사회 ‘갑질’을 끝내겠다고 한다. 두려움이 앞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