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난세가 부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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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키려는 열정 보여준 태극기 집회
대선패배후 '티파티'로 생기 찾은 미국 공화당처럼
자유민주·시장경제 위한 풀뿌리운동 시작해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대선패배후 '티파티'로 생기 찾은 미국 공화당처럼
자유민주·시장경제 위한 풀뿌리운동 시작해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1941년 12월7일 일본 함대는 하와이 펄 하버의 미국 태평양 함대를 공격했다. 6척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함재기들은 모항에 정박한 미국 전함들을 거의 다 파괴했다.
미군 지휘관들은 일본의 기습을 예견하지 못했다. 대규모 기습 작전을 벌이기엔 하와이와 일본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미군에 쉽게 탐지될 터였다. 그러나 일본 함대는 겨울엔 파도가 거칠어 배들이 다니지 않는 북태평양 항로를 골라 미군의 탐지를 피했다.
‘적 공습, 펄 하버. 이것은 훈련이 아님’이라는 태평양 함대의 전문 보고를 받자, 프랭크 녹스 해군장관은 “세상에, 이럴 수가 없는데. 필리핀 얘기 아닌가?”하고 되물었다. 이처럼 혼비백산한 미국 해군 수뇌부가 취한 첫 조치는 대서양 함대 사령관 어니스트 킹 제독을 미국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킹은 매우 뛰어났으나 성격이 거칠었고 화를 잘 내서 적이 많았다.
임명 소식을 듣자, 킹은 “어려운 처지에 빠지면 사람들은 개차반들을 부른다(When they get in trouble they send for the sons-of-bitches)”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난세는 거친 사람들을 부른다. 남이 겁내는 일을 태연히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뒷날 누가 킹에게 확인하자, 그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만일 당시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펄 하버가 피습됐을 때 미국 해군이 킹을 찾은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대한민국의 보수는 홍준표를 찾았다. 두 사람 다 자신의 ‘개차반’ 기질이 난국을 헤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했다.
킹은 영국에 휘둘려 미국의 전략이 대서양에 편중된 상황에서 태평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치열한 과달카날 싸움에서 이겨 후퇴를 모르던 일본군이 철수하도록 강요했다. 홍준표는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서 보수 유권자가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선거 과반의 지지를 받는 ‘산사태’를 막았다.
돌아보면 보수 정권의 몰락은 보수 지도자들이 이념의 중요성을 모른 데서 비롯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널리 퍼졌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을 넘어서 실용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주의 경제 정책인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삼았다. 이번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극심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줬다.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소생시키려는 ‘풀뿌리 운동’이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열정이 거대한 암류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줬다. 좌파 정권이 들어선 지금 그런 암류를 생산적 활동에 돌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활발한 시민적 활동 없이 실패한 보수 정당이 정권을 되찾을 수는 없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자 미국 공화당원들은 ‘티파티(Tea Party)’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를 확인하고 민주당 정책에 맞서는 정책들을 만들면서 풀이 죽었던 공화당은 생기를 되찾았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풀뿌리 운동이 나와야 한다.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툰다. 선거에 패배한 정당이 분란에 휩싸이는 것이야 이상하지 않지만, 그런 다툼은 평면적 영토 분쟁이어서 해소되기 어렵다. 서울광장에 나섰던 시민들의 열정이 정당에 작용해야 모든 분열을 포용하는 입체적 융합을 이룰 수 있다.
홍 후보는 자신의 역량만으로 4분의 1에 가까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일단 난세가 부르는 인물임을 증명한 것이다. 앞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대한민국의 보수가 부르는 인물이 되려면 그는 사소한 정치적 자산에 눈길을 줘선 안 된다. 자신을 지지한 시민들의 열정을 한데 모아 정권을 되찾는 과업을 시작해야 한다.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
미군 지휘관들은 일본의 기습을 예견하지 못했다. 대규모 기습 작전을 벌이기엔 하와이와 일본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미군에 쉽게 탐지될 터였다. 그러나 일본 함대는 겨울엔 파도가 거칠어 배들이 다니지 않는 북태평양 항로를 골라 미군의 탐지를 피했다.
‘적 공습, 펄 하버. 이것은 훈련이 아님’이라는 태평양 함대의 전문 보고를 받자, 프랭크 녹스 해군장관은 “세상에, 이럴 수가 없는데. 필리핀 얘기 아닌가?”하고 되물었다. 이처럼 혼비백산한 미국 해군 수뇌부가 취한 첫 조치는 대서양 함대 사령관 어니스트 킹 제독을 미국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킹은 매우 뛰어났으나 성격이 거칠었고 화를 잘 내서 적이 많았다.
임명 소식을 듣자, 킹은 “어려운 처지에 빠지면 사람들은 개차반들을 부른다(When they get in trouble they send for the sons-of-bitches)”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난세는 거친 사람들을 부른다. 남이 겁내는 일을 태연히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뒷날 누가 킹에게 확인하자, 그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만일 당시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펄 하버가 피습됐을 때 미국 해군이 킹을 찾은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대한민국의 보수는 홍준표를 찾았다. 두 사람 다 자신의 ‘개차반’ 기질이 난국을 헤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했다.
킹은 영국에 휘둘려 미국의 전략이 대서양에 편중된 상황에서 태평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치열한 과달카날 싸움에서 이겨 후퇴를 모르던 일본군이 철수하도록 강요했다. 홍준표는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서 보수 유권자가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선거 과반의 지지를 받는 ‘산사태’를 막았다.
돌아보면 보수 정권의 몰락은 보수 지도자들이 이념의 중요성을 모른 데서 비롯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널리 퍼졌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을 넘어서 실용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주의 경제 정책인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삼았다. 이번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극심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줬다.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소생시키려는 ‘풀뿌리 운동’이다.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열정이 거대한 암류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줬다. 좌파 정권이 들어선 지금 그런 암류를 생산적 활동에 돌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활발한 시민적 활동 없이 실패한 보수 정당이 정권을 되찾을 수는 없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자 미국 공화당원들은 ‘티파티(Tea Party)’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를 확인하고 민주당 정책에 맞서는 정책들을 만들면서 풀이 죽었던 공화당은 생기를 되찾았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풀뿌리 운동이 나와야 한다.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툰다. 선거에 패배한 정당이 분란에 휩싸이는 것이야 이상하지 않지만, 그런 다툼은 평면적 영토 분쟁이어서 해소되기 어렵다. 서울광장에 나섰던 시민들의 열정이 정당에 작용해야 모든 분열을 포용하는 입체적 융합을 이룰 수 있다.
홍 후보는 자신의 역량만으로 4분의 1에 가까운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일단 난세가 부르는 인물임을 증명한 것이다. 앞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대한민국의 보수가 부르는 인물이 되려면 그는 사소한 정치적 자산에 눈길을 줘선 안 된다. 자신을 지지한 시민들의 열정을 한데 모아 정권을 되찾는 과업을 시작해야 한다.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