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은 언제나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슈다. 보수정권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면 야당 정치인들이 노동계와 합세해 반대하는 일이 반복됐다.

정권 교체를 통해 새로 대통령이 된 야당 정치인이 보수정권의 노동개혁 정책을 계승해 재추진한 적도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추진한 노동개혁안을 밀어붙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YS 정부 때인 1996년 12월26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신한국당 의원 154명은 정리해고제 도입 등 노동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했다. 당시 DJ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가 법안 처리에 반대하자 새벽을 틈타 국회에 잠입해 야당 몰래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의원 전원은 즉각 국회에서 항의 농성을 시작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도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파문이 확산되자 YS는 이듬해 3월 야당과 정리해고 시행 유예 등 수정안에 합의했다. YS는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노동법 개정이 지연되는 만큼 국가 경쟁력은 후퇴할 것이 분명했다”고 안타까워했다. 1997년 말 DJ는 정리해고 도입 유예와 요건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자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정리해고제 시행을 강력히 압박했다. DJ는 IMF가 내건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DJ는 정리해고와 대체근로, 변형근로제 도입 등 YS가 추진한 노동개혁안을 상당수 계승했다. YS가 DJ의 반대로 뜻을 굽힌 정책들이 2년여 뒤 DJ에 의해 대부분 실현된 셈이다.

YS에서 DJ로 이어지는 노동개혁 과정은 새로 출범한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박근혜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노동개혁 5대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DJ와 같은 길을 걸을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