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14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가족’.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14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가족’.
가족을 소재로 한 연극은 대개 ‘신파’ 성격이 짙다. 부모와 자식 간 갈등이 등장해도 결국 자식이 잘못을 뉘우치고 가족의 품에 안기는 ‘돌아온 탕자’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 관계는 그리 간단치 않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가족’은 가족이라는 살갗 아래로 파고든다. 매끈한 피부로 덮여 있는 뜨겁고 물컹한 것들을 끄집어낸다. 가장의 권위로 자식의 모든 선택을 통제하는 아버지 기철(김정호 분)과 그런 아버지에게 상처받아 주체성을 잃고 무기력에 빠진 아들 종달(이기돈 분)의 관계를 통해서다. 종달에게 가족은 기댈 언덕이라기보다 굴레에 가깝다.

국립극단이 1958년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된 고(故) 이용찬(1927~2003)의 희곡을 ‘근현대 희곡 재발견’ 시리즈로 59년 만에 같은 무대에 올렸다. 일제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 제헌의회 구성,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가족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작용한다. 주된 배경인 1950년대 풍속과 말투 등 당시 사회상을 엿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공연은 상징적인 무대와 빠른 장면 전환, 조명·음향의 효과적 연출 등으로 59년 전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입혔다. 무대 디자인이 특이하다. 배우들은 사각형 몸체에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얹은 집 모양의 바닥 위에서 연기한다. 바닥 면은 날 때부터 주어진 틀로서의 가족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바닥은 기울어져 있다. 인물들이 당장은 균형을 잡고 서 있지만 언제 미끄러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다. 가족 관계의 위태로움과 기형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실적인 무대세트나 소품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연출은 의도적으로 외형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직 배우들이 드러내는 인물 내면의 심리에 몰입하게 하려는 설정이다. 베테랑 배우들의 농밀한 연기력은 이런 설정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다. 이런 연출과 연기는 극의 막바지에 뒤틀린 부자(父子)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한다.

연극은 파국 이후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됐을지 알려주지 않는다. 가족을 억지로 화해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남은 자들의 삶이 그런 대로 굴러갈 것임을 암시한다. 그런 면에서 현실적이다.

그런데 커튼콜 이후 연출이 산통을 깬다. 가족 구성원과 출연진 모두가 무대 앞에 서서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뒤를 바라보면 집 모양의 무대 바닥이 점차 수직에 가깝게 올라오고 벅찬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깔린다. 극은 부자의 갈등을 애써 봉합하지 않고 끝나는데, 커튼콜에서 화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다. 열린 결말의 극적 여운을 해친다. ‘국립단체스러운’ 느낌도 풍긴다. 오는 14일까지, 2만~5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