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편견을 깬 세 흑인 여성 수학자
영화 ‘히든피겨스’는 미·소 냉전시대에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흑인 여성 삼총사의 실화를 다뤘다. 수학자 캐서린, 컴퓨터 프로그래머 도로시, 엔지니어 메리는 우주선 발사 프로젝트 성공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이다. 영화는 백인과 남성 중심의 NASA에서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중 장벽을 극복한 인물의 고군분투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차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유색인종 화장실이다. 백인 남성 일색인 부서에 배치된 캐서린은 화장실을 찾아 수백미터 떨어진 건물로 하이힐을 신고 뛴다. 사무실 커피포트도 백인들과 공유하지 못한다. 이러한 1960년대 상황을 고려하면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흑인사회는 어떤 전율을 느꼈을까?

캐서린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열등하다는 편견, 여성이 수학에 약하다는 편견을 오직 실력으로 깨뜨린다. 영화 시작은 꼬마 캐서린이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소수(prime number)를 판별해 “15, 16, 소수, 18, 소수…”라고 말하며 걷는 장면이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캐서린은 우주선 궤도를 계산해 착륙 좌표를 알아내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18세기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만든 ‘오일러 방법’을 적용한다.

수학에는 노벨상이 없다. 그에 준하는 것이 필즈상이다. 1936년 필즈상이 제정된 후 처음으로 여성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3년 전인 2014년이었다. 여성 최초 필즈상 수상자, 그리고 영화 속 캐서린을 보면 여성과 수학 사이의 거리도 점차 좁혀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세계적으로 ‘STEM’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STEM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사전적 의미인 ‘나무줄기(stem)’처럼 국가 경쟁력을 떠받치는 근간이다. STEM은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내기에 나라마다 STEM 인재를 양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TEM에서 여성 비율이 낮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더욱 심하다. 수학이 여학생의 진학 계열 선택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수학이 여학생의 인지 양식에 적합하도록 탐구나 실생활 맥락을 가미하고, 수학에 대한 자기 긍정 자세를 키워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에도 수많은 캐서린, 도로시, 메리가 탄생하고 그리하여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전문 직업 세계에서도 ‘절반의 몫’을 하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란다.

박경미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