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자체적으로 행장도 못 뽑는 수협
수협은행이 20일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를 열고 차기 행장 후보 추천을 시도했지만 또 실패했다. 5명의 행추위원은 불과 두 시간 만에 회의를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의견차를 좁히기 힘든 만큼 더 이상 회의 시간을 늘려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협은행의 10번째 행추위는 이렇게 끝났고, 수협은행 54년 역사상 초유의 행장 대행 체제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되게 됐다.

수협은행이 자체적으로 행장 후보를 선출하지 못하는 것은 수협중앙회와 정부의 갈등 때문이다. 수협중앙회는 지난해 말 수협은행이 분리 독립됐기 때문에 내부 출신 인사가 행장으로 선임돼야 한다고 나섰다. 이제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그만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내세운 인물이 강명석 수협은행 상임감사다.

반면 정부는 수협은행이 2001년 받은 공적자금을 완전히 갚지 못했기 때문에 수협중앙회가 내세우는 인사는 행장이 돼선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수협중앙회와 수협은행이 유착하면 경영이 부실해지고 공적자금을 언제 갚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특정 후보를 밀지는 않지만 강 감사는 무조건 안 된다고 선을 긋고 있다.

수협은행 행추위는 네 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 명의 행장 후보를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행추위원 다섯 명 중 세 명은 정부 측, 두 명은 수협중앙회 측 인사다. 행추위가 공전을 거듭하는 이유다. 금융권은 수협은행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대통령 선거 이전에는 풀리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행추위원들이 대선 전까지 행장 추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수협은행의 자산은 27조원 정도로 1위 은행인 국민은행(310조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금융 서비스 수준도 일반 시중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임직원과 행추위원까지 합심해서 뛰어도 언제 경쟁력을 갖출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수협중앙회와 정부는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수협은행에 드는 멍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현일 금융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