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화해 큰 줄기 바꿔온 'G2 회동'…트럼프·시진핑, 갈림길에 서다
오는 6, 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리조트에서 열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두 정상이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동북아 정세는 물론 국제 질서도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중 정상회담은 세계사에 중요한 분기점을 찍어왔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맞부딪치는 주요 2개국(G2)으로 급부상한 이후 양국 지도자의 회담 결과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무역, 남중국해 패권, 북한 핵 문제를 놓고 서로의 이익을 다투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회담은 강(强) 대 강(强) 대결이다.

◆대립에서 화해시대 열었지만

1972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당시 공산당 주석(오른쪽)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1972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당시 공산당 주석(오른쪽)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간 정상회담은 6·25전쟁 이후 얼어붙어 있던 미·중 관계의 ‘해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79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부총리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미·중 국교수립으로 이어졌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다른 국가들이 외교적으로 대만을 독립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2000년대 들어 워싱턴 정가에선 급부상한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을 거쳐 미국이 2005년 도달한 결론은 △중국의 부상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으며 △냉전시대와 같은 대중(對中) 봉쇄정책은 성공할 수 없고 △중국에 대한 관여와 소통을 통해 중국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9년 1월 미국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덩샤오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만났다. AP연합뉴스
1979년 1월 미국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덩샤오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만났다. AP연합뉴스
이후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미국의 이런 대중전략에 따라 이뤄졌다.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이뤄진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를 요구하는 공세적 태도를 보였다. 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은 적정선에서 이를 수용하는 방어적 태도를 보였다.

같은 맥락에서 2011년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은 미·중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정상회담으로 꼽힌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질서 운용의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G2 시대’의 공식 개막을 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상호존중을 통해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며 포괄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첫 만남인 2013년 6월 정상회담은 ‘오바마-시진핑 체제’하에서 미·중 관계의 큰 틀을 짠 회담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부터 미국이 추진해온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대한 중국 측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했다. 시 주석은 ‘신형 대국관계’ 수립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오바마 때와 달라진 공수

이번 정상회담의 양상은 오바마 정부 때와는 180도 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수’가 되고, 시 주석이 ‘수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기간 때부터 중국을 겨냥한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 내에서도 더욱 강경한 대중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2기 들어 미국 보수진영에선 그의 유화정책이 중국의 부상을 도왔다는 비판론이 꾸준히 제기됐다.

보수 성향의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년간 표류해온 대중정책을 ‘리셋(재조정)’할 기회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1979년 국교수립 이후 미국의 대중정책 기조가 ‘관대한 회유’였다면 앞으로는 ‘철저한 상호주의’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금 미·중 관계는 ‘불안정한 교차로’에 서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번 회담에서 미·중 관계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비영리재단 아시아소사이어티도 보고서에서 중국산 제품에 매기는 관세를 인상하고, 중국 시장에서 동일한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중국의 대미(對美) 투자도 제한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을 펼쳤다.
대립·화해 큰 줄기 바꿔온 'G2 회동'…트럼프·시진핑, 갈림길에 서다
◆상호이익 빅딜설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만남을 불과 1주일 남겨둔 지난달 31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대상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집중조사하는 것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 임기 동안 미국인의 번영이 도둑맞는 일은 종식될 것”이라며 “정상회담이 상황(미국의 무역적자 문제)을 되돌리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도 “북한 핵 문제와 더불어 무역이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라며 “케이크나 나눠 먹는 한가한 자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응수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일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중·미 간 무역은 상호보완적이며 서로가 이득을 얻는 윈윈 구조”라며 “대중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미국의 조치들은 국제규범, 특히 (미국 주도로 창설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역공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양측의 공방에도 불구하고 통상분야에선 어느 정도 성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반면 북한 핵,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지정학적 이슈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북한 핵, 사드, 남중국해, 대만 문제를 묶어서 ‘빅딜’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관련해 미국 전문가들이 ‘거래에 기반한 외교’라는 표현을 쓴다”며 “양국 정상이 서로 절실한 부분을 주고받는 식의 타협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이번 회담이 향후 미·중 관계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가 되지 못할 것이란 얘기도 내놓는다. 트럼프 정부가 아직 아시아정책의 큰 방향을 확정하지 않았다는 배경에서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정부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란 용어를 폐기할 순 있지만 대중 압박을 핵심으로 하는 아시아 중시정책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핵 문제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설정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워싱턴=박수진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