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남산
서울 한복판에 있는 103만㎡의 도심공원 남산. 조선시대부터 도성 남쪽에 있다 해서 남산이라고 불렀다. 본래 이름인 목멱산(木覓山)도 ‘마뫼’에서 왔으니 곧 남산이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다. 남산이 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00여년 전이다. 1910년에 세운 ‘한양공원(漢陽公園)’이란 고종 친필의 석비(石碑)가 남아 있다. 보릿고개 시절이던 1962년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장안의 명물이었다.

조선시대 이곳 주변에는 두 부류의 지식인들이 살았다. 출세길을 준비하는 남산골 샌님들과 정계에서 물러난 은퇴자들이다. 이덕무가 박제가를 처음 만난 곳도 여기다. 서거정은 남산 꽃구경을 좋아해서 ‘장안 만호엔 집집마다 꽃밭이니 누대 비치어 붉은 비 오는 듯하다. 청춘이 얼마 남았는가. 마음껏 구경하세’라는 시를 읊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고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소나무는 구한말 땔감으로 벌목돼 거의 없어졌다. 지금은 전나무와 잣나무 사이로 떡갈나무, 아카시아 등 활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산허리 둘레길을 따라 펼쳐지는 꽃무리와 야외식물원, 남산성곽길 풍광도 아름답다. 저물녘 노을에 물드는 한강과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구경하는 것 또한 백미다.

밤이면 색색의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는 N서울타워는 남산의 랜드마크다. 네 가지 색깔로 그날의 대기 상황을 알려준다. 맑은 날은 파란색, 보통인 날은 초록색, 대기오염이 심한 날은 노란색,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날은 붉은색으로 바뀐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로 알려지면서는 한류 관광코스가 됐다. 도민준과 천송이가 자물쇠를 건 자리는 국내 연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로 연일 붐빈다.

지난 한 해 남산 방문객이 10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봄과 초여름에는 매월 100만명 이상 몰렸다. 꽃이 좋은 4월엔 115만명을 돌파했다. 단체 여행객을 태운 관광버스도 10만2000대를 넘어섰다. 이들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왔다. 중국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지하철역 인근 관광지가 남산 서울타워라니 걸어서 찾는 사람도 많으리라. 하긴 ‘외국인이 갈 수 있는 데가 남산하고 경복궁, 동대문 말고 뭐 있느냐’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정작 남산을 잘 모르는 건 우리다. 철 따라 꽃과 새와 다람쥐의 향연이 펼쳐지는 도심 속의 숲. 봄마중 삼아 남산도서관 옆 소월시비에 새겨진 ‘산유화’ 구절을 읊조리면서 호젓하게 남산길을 걸어보자.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