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LCD(액정표시장치) 10.5세대 투자를 결정하지 못해 난국에 빠졌다. 중국 BOE, 차이나스타와 일본 샤프에 이어 LG디스플레이 등 경쟁사가 모두 10.5세대 투자를 시작한 상태지만, 삼성 수뇌부가 특검 수사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0.5세대 공장을 착공한 BOE 등은 내년 1분기부터 생산을 본격화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늦어도 1분기엔 투자를 결정해야 미래 LCD업계 주도권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 수사에 투자결정 늦춰져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충남 아산 탕정에 LCD 10.5세대(유리기판 3370×2940㎜) 공장을 짓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왔다. 부지 확보 등이 끝났지만 8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이어서 미래전략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미래전략실은 지난해 11월부터 ‘식물’ 상태다. 최순실 사태에 엮여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서는 세계적 강자다. 스마트폰용 OLED 패널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LCD 사업에선 최근 5년간 잇따라 라인을 폐쇄해 대형 라인은 7세대(1870×2200㎜) 1개, 8세대(2200×2500㎜) 라인 2개만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분기 BOE를 시작으로 차이나스타, 샤프-폭스콘, LG디스플레이가 순차적으로 10.5세대 라인을 가동하면 LCD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이는 시장 변화와 관계가 깊다. 최근 프리미엄 TV 시장의 주력은 55인치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초고해상도(UHD)의 두 배에 달하는 8K TV가 출시되며 65인치가 대세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시장조사 업체의 예상이다.

삼성이 보유한 8세대 라인은 55인치 패널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기판유리 한 장에서 55인치를 6장까지 뽑아낼 수 있다. 패널을 잘라낸 뒤 버리는 면적은 10%도 안 된다. 하지만 여기서 65인치 패널을 생산하면 3장밖에 만들 수 없다. 버리는 면적도 30%를 넘는다.

하지만 10.5세대 라인에선 65인치를 8장까지 뽑아낼 수 있다. 남는 면적도 10% 미만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는 얘기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중국 차이나스타가 선전에 착공한 10.5세대 공장 지분을 10% 확보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9년이면 가동되는 10세대 이상 LCD 공장이 5개에 달한다”며 “65인치 시장이 급속히 커지지 않으면 LCD 패널 값이 폭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패널 값이 떨어지면 대형 TV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 1위 TV사업 경쟁력 훼손

이는 10년째 글로벌 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 TV사업의 경쟁력 훼손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소니의 사례에서 드러난다. 2000년대 초까지 TV업계 맹주였던 소니는 LCD TV가 뜨자 스스로 생산라인을 짓지 않고 2003년 삼성과 합작사인 S-LCD를 세웠다. 소니는 삼성이 경영권(50%+1주)을 쥔 S-LCD에서 패널을 공급받았지만 아무래도 우선권이 있는 삼성전자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몇 인치 패널을 얼마나 생산할지를 삼성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소니는 2006년 삼성에 TV업계 1위 자리를 넘겨줬다. 지난해 소니의 시장 점유율은 삼성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OLED TV를 포기하고 LCD 기반의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에 주력하기로 한 상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사업을 대폭 축소하면 한 해 5000만대 이상의 패널을 다른 회사에서 수급해야 한다. 작년 말 샤프가 갑작스레 패널 600만대 공급을 중단해 충격을 받은 터라 자체 LCD 생산라인 확보는 더욱 절실하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