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 규범과 상식 그리고 약속
법은 우리 생활의 여러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법을 어려워하고 가급적 법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좋다는 생각을 한다.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도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연 법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법’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도덕규범과 상식, 그리고 사회 구성원 사이의 약속을 모은 것이다. 법은 도덕규범을 반영한다. 도덕규범은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이고 원칙이다. 상식은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일반적인 인식에 바탕한다. 그러므로 상식적이지 않은 법은 부자연스럽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도덕규범과 상식을 보완하고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제도는 사회적 약속을 통해 설정되고 그런 약속이 법의 일부로 반영된다.

사람의 목숨을 해하지 말라는 것은 분명한 도덕규범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의 목숨을 해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대응하다가 부득이 상대방의 목숨을 해하게 된다면 그런 경우까지도 살인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법은 그래서 이런 경우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대응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은 도덕규범이나 상식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기에 그런 구체적인 기준은 사회적 약속을 통해 법의 일부로 편입된다.

도덕규범과 상식에 반하지 않는 법은 분명하고, 어렵지 않다. 그런데 약속을 반영하는 법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다. 약속의 내용을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렇게 적용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약속이 잘못된 것이니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약속을 반영하는 법은 사회 구성원의 공감과 수용에 바탕해 그 약속이 실현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도덕규범과 상식에 맞게 제정돼야 하며 그렇게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 도덕과 상식에 어긋나는 약속을 정하는 법은 신속하게 개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법을 쉽게 받아들이고 지킬 수 있다. 도덕적이고 상식적이며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약속에 바탕한 법의 제정과 실행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분명하고 예측 가능한 법 제도를 유지해가기를 희망한다.

박상일 <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sipark@hmp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