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해수부
한진해운 청산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해양수산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해수부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 각 선사 대표들을 불러모아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간담회’를 연다. 같은 날 오후엔 부산에서 김영석 장관 주재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참석하는 ‘해운산업 지원을 위한 정책금융간담회’를 연다.

해수부는 이 자리에서 현대상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국책은행 등에 요청할 계획이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현대상선 지원 필요성을 밝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2M 가입이 전략적 협력이라는 ‘반쪽짜리’에 그치면서 위기감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의 이런 ‘잰걸음’은 당초 계획된 건 아니었다. 한진해운의 청산 임박과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정회원 가입 실패로 정부 무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마지못해 마련한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해수부는 오전 간담회에서 선사 대표들에게 정부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후속 진행상황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10월31일 발표한 정책에 대해 업계에서는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해주겠다는 취지로 45일 만에 간담회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선사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유토론 시간은 20분에 불과하다. 업계 의견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인지 의문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선사 대표들의 다음 일정을 고려해 시간을 짧게 잡았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주무부처 차관이 직접 목소리를 듣겠다는데 일정을 핑계로 일찍 자리를 뜨는 업계 대표가 있을까. 어쩌면 선사 대표들은 해수부에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한진해운을 보고 깨달았을지 모른다.

해수부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와 이후 물류대란 처리 과정에서 존재감이 미약했다. 이번 간담회도 단순한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저지른 일을 ‘설거지’하고 있다”는 해수부의 항변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해운산업 주무부처의 존재 의미가 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