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개선 박차 가하고 한중 사드갈등 완화할 기회 놓쳐
전문가 "제도화한 외교안보 시스템으로 대응해야"


탄핵 국면에서 한일중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가 결국 무산되면서 우리 정상외교의 장기 공백이 우려된다.

올해 연례 한일중 정상회의 의장국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13일 오전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중 정상회의를) 내년 적당한 때에 일본에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가 열리지 못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의장국인 일본이 제시한 개최 일정(12월 19∼20일)에 중국이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대리참석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상황이 회의 연기와 무관치 않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한국,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상황에서 참석하고 싶지 않은 중국에게 '핑곗거리'를 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번 회의 무산으로 한국이 놓친 외교적 이익은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황교안 총리 대리 참석) 이상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3국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재임 중 처음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미뤄진 점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박 대통령이 재임 중 처음 일본을 방문할 경우 3년 가까이 치열하게 갈등하다 작년 12월 군위안부 합의 이후 개선 흐름을 타는 한일관계에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박 대통령은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재임 중 한차례도 이웃 일본을 방문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도 생겼다.

또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박 대통령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사이의 양자회담이 열렸다면 양국 정상 간에 손상된 신뢰를 다소나마 복원하는 기회가 됐을 수 있다는 점도 짙은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 '적당한 때' 한일중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이 정상화하기 전에 일정을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한국 정상외교의 공백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 만큼 내년 1월 20일 미국 새 대통령으로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제때 개최하지 못함으로써 미국 신 행정부의 대 한반도 정책 수립 과정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당장 나온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시진핑, 아베 신조, 블라디미르 푸틴 등 이른바 '스트롱맨'(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주변 4강의 각축전 속에 '사령탑 없는' 우리 외교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상외교 공백 상황에서의 대응 방안에 언급, "그동안 대북정책이나 한미동맹. 중국관계 등에 대응하면서 정립된 시스템이 있다"며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외교안보 대응 시스템이 제도화된 만큼 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핵문제 등이 상당히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미국 신행정부 관계자나 중국 측과 긴밀히 협의하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시스템이 말 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며 제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