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충북에서 닭·오리 431만7천마리 살처분
초여름 돼야 재입식 가능…"AI는 가금류 농가 재앙"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서해안 벨트'에 속한 충북 음성과 진천은 대표적인 국내 오리농장 밀집지역이다.

지난 10월 기준 오리농장 수는 음성 77개, 진천 44개에 사육 오리는 80여만 마리에 달했다.

지난달 17일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 오리 농가가 AI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불과 20일 만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121개에 달했던 농장이 음성 7곳, 진천 5곳만 남았다.

남아 있는 오리는 모두 더해도 10만 마리에 불과하다.

감염 농장은 물론 주변 농장까지 대대적인 예방적 살처분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AI 확산세를 누그러뜨리려 오리 사육농장 출입 통제는 물론 가금류·소유자 이동 제한, 예방적 매몰 처분 등 취해지 않은 조치가 없을 정도로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AI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입식 사전 신고제와 겨울철 총량제도 시행했고, AI 매개체로 꼽히는 쥐를 잡자는 캠페인도 했다.

그러나 AI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충북에서는 지난 6일 기준 닭 103만6천936마리, 오리 69만1천705마리, 메추리 7만1천100마리 등 179만9천741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축산 방역 당국이나 농장주 모두 안간힘을 썼지만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AI 폭탄 탓에 '백약이 무효'였던 셈이다.

도내 살처분 마릿수는 작년 2∼3월(70만9천 마리)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며, AI가 극성을 부렸던 2014년 1∼4월(180만9천 마리) 때에 육박했다.

올해를 포함, 최근 3년간 AI로 인해 살처분된 가금류는 무려 431만7천마리에 달한다.

AI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가금류 사육 농가들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음성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A(52)씨는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 AI 파동을 겪으면서 올해 오리 사육을 포기했다.

A씨는 "AI는 오리 농가에 재앙과도 같다"며 "2년 연속 기르던 오리를 모두 살처분을 하고 나니 더는 오리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충북도 방역대책본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A씨처럼 오리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끼 오리를 들여다가 키우는 재입식도 당장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AI가 마지막으로 발생한 농가의 살처분이 끝난 날로부터 21일간 추가 발생이 없어야 하고 반경 3㎞ 보호지역 내 농가에서 사육하는 오리나 닭에 이상 징후가 없어야 재입식 조건이 갖춰진다.

이런 조건을 갖춰야 비로소 보호지역이 예찰지역으로 전환된다.

그 이후에도 열흘간 AI가 추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일제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면 이동제한이 해제된다.

2014년의 경우 AI가 마지막으로 발생했던 농가의 가금류 살처분이 끝난 그해 4월 21일 이후 39일 만인 5월 30일이 돼서야 이동제한이 풀렸다.

재입식 시기를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AI 발생 농가는 입식 시험을 거쳐야 한다.

무더기 폐사가 발생할 정도로 AI에 민감한 닭을 3주가량 사육하면서 검사 결과 AI 음성 반응이 나와야 규제가 완전히 풀려 재입식이 가능하다.

방역 당국의 지원으로 이런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살처분 이후 재입식을 하기까지 4∼5개월은 족히 걸린다.

"이참에 오리 사육을 청산해야겠다"고 푸념하는 농장주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오리를 키우는 게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AI가 터졌다 하면 이듬해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무일푼' 신세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생계 문제가 농장주들의 재기 의지를 꺾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탓에 인근 지역에서 AI가 터지면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AI 감염 전 일찌감치 살처분하기를 희망하는 농가가 있을 정도다.

사육 오리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보상금의 20%가 깎이기 때문이다.

자식처럼 키우던 오리를 얼마 전 살처분한 진천의 B(64)씨는 "정부가 지원하는 생계안정자금 덕분에 그나마 근근이 생활을 꾸려갈 수 있지만 연례행사처럼 터지는 AI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더는 오리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