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트·월스트리트저널 등 분석

계속된 경기침체, 높은 실업률 속에 부실은행 구제금융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이탈리아 개헌안 국민투표의 부결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탈리아 아레초에 사는 레티치아 지오지아니는 4일(현지시간)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에 망설임 없이 반대표를 찍었다.

그는 1년 전 부실은행이었던 방카 에트루리아에 정부 구제금융이 투입되면서 10만 유로(1억2천만원)에 달하는 예금을 모두 잃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작년 방카 에트루리아와 함께 카리키에티, 방카 델레 마르케, 카리페라라 등 4개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약 3억 유로의(3천866억여원) 상당의 채권을 무효화해 많은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지오지아니는 헌법 개정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구제금융 당시 피해당한 국민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던 정부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반대표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4개 은행과 관련해 발생했던 일들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심각한 궁핍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아주 부당했다"며 "(구제금융은) 아주 수치스러웠다.

그런데 정부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한다고?"라고 반문했다.

부실은행 구제금융 정책에 반발해 반대표를 찍은 사람은 지오지아니 뿐이 아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당시 40억 유로(5조원)에 달하는 구제금융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들 4개 은행에 돈을 예금했다가 손해를 본 수천 명의 국민이 돈을 회수하기 위해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계속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대한 국민의 반감 역시 부결을 이끈 주요 원인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현재 11% 중반을 넘나들고,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한 상태다.

또 유로존 회원국의 평균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작년 성장률이 0.8%에 머물렀다.

이에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인 오성운동이 계속되는 경제침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등에 업고 부결운동을 벌인 것도 렌치 총리의 패배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는 다음 총선에서 이기면 유로존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탈리아 개헌안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된 것으로 전망되자 렌치 총리는 이날 연설을 통해 "실패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며 사임을 발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viv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