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빚 18경원…'돈의 향연' 끝나고 '빚의 복수' 시작된다
‘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머니 볼》의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7년을 한 달도 채 못 남기고 각종 예측기관의 전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세계나 우리 국민에게 가장 가슴 깊게 파고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경고다.

2009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돈이 풀리고 사용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됐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경제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기간도 8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져갔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빚 18경원…'돈의 향연' 끝나고 '빚의 복수' 시작된다
세계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18경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225%로 임계치로 여겨지는 200%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2억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2500만원에 달한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무서운 것은 아니다. 돈값인 금리가 낮고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다면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부채 경감 신드롬’을 통한 경기부양책인 금융완화가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세계 경제의 현실이다.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수준을 넘어선 빚을 더 늘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빚 부담(최소한 국민의 이자만이라도)을 줄여야 한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 막 돋기 시작한 ‘경기회복의 새싹(green shoot)’이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빚 부담을 줄이더라도 ‘연착륙’시켜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달 13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에서 0.25%포인트 추가 금리 인상이 확실시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내년 1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는 ‘미국의 재건’이다. 대외적으로 보호주의 정책과 함께 내부적으로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1930년대식 ‘트럼프판 뉴딜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수입 면에서는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1980년대 초 ‘레이거노믹스’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재정지출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재정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경기가 살아나기까지 늘어날 재정적자를 국채로 메운다면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금리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채금리가 상승할 경우 정책금리도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간 자금흐름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 금리가 오르면 다른 국가는 경기여건과 관계없이 금리를 올려야 금융시장과 경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 관계다. 트럼프 당선 이후 국채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함에 따라 채권가격은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도 없이 ‘순간 폭락(FC·flash crash)’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국채금리가 더 상승하면 ‘국채시장→주거용 부동산 시장→신흥국 증시’ 순으로 FC의 전염효과가 우려된다.

IMF를 비롯한 예측기관들이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 경제에 복합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준금리 등 정책수단이 제자리에 복귀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경제주체의 빚 상환능력과 가처분소득이 더 떨어지고 정책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민간채무가 많은 나라다. BIS가 민간채무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 대비 민간채무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선에서 벗어난 정도)이 3.1%포인트다. 주의(2%포인트 미만 ‘보통’, 2~10%포인트 ‘주의’, 10%포인트 이상 ‘경고’) 단계다. 내년 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금리 상승에 따른 빚 부담을 연착륙시키지 못할 경우 1%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부터 우리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관리해 나가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