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치가 훼손하는 경제 면역체계
나라 전체가 분노보다는 허탈감에 휩싸여 있다. 집단적 공황장애에 가깝다.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을 애써 회피하는 것처럼.

가뜩이나 경제가 침몰하는 와중에 이제 선장마저 잃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경제는 바둑으로 치면 팻감으로 한 수 한 수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7% 증가에 그쳐 2분기 0.8%보다 하락했다. 이런 수치마저도 수출, 민간소비나 설비투자 등 경제의 기초 여건에 기반을 둔 동력보다는 건설투자와 정부 지출 같은 일시적이거나 인위적 요인을 통해 이룬 결과다. 또 작년 이후 3분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장률이 0%대에 머무르면서 침체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진퇴양난에 빠진 사이 전대미문의 정치적 악재가 터져서 혹자는 이러다 다시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한다. 1997년의 아픈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위기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지 비틀링메이어, 크리스틴 윌라드, 제임스 포터바, 래리 서머스와 같은 일련의 학자들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선진국에서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위기 사이에 어떤 유의미한 관계도 찾을 수 없는 반면 신흥국에서는 유의미한 관련성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이들 연구는 분석 자료가 너무 오래된 데이터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한 연구로 2000년대 초에 발표된 젠핑 메이 뉴욕대 교수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외환위기를 겪은 9개국을 분석했다. 1994년의 터키와 베네수엘라, 1995년의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1997년의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을 분석 대상으로 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9개 나라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모두 위기를 겪은 해에 대선이 있거나 대선 이후 정권 이양기에 있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선이 있는 해나 정권 이양기에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더불어 이를 해소할 컨트롤타워 부재로 위기에 취약해진다는 시사점을 준다. 그는 경상수지나 자본수지 등 여러 변수를 통제한 이후에도 이런 대선 변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함을 밝혀냈다. 더불어 신흥국들에서 대선이 있는 해는 평균적으로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가 유의미하게 일어나며 특히 주가 변동성이 커진다는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의 중요성에 대한 실증적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분석 결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위기 자체를 일으키는 요인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 충격이 왔을 때 민감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구별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즉, 정치적 불확실성이 병을 일으키는 병원(病原)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병원이 침투했을 때 이에 대항하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는 요인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이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외환위기에 대한 케이스 분석을 했다. 메이의 분석과 달리 그는 정성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분석의 지평을 넓혔다. 그는 단순히 대선의 유무뿐 아니라 여소야대와 같은 정치적 지형까지 포함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지표를 다양화했다. 분석 결과 정치적 불확실성이 위기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설명 요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추가적으로 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위기 자체를 초래하는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고 외부에서 충격이 왔을 때 이에 대한 대응을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내년은 19대 대선이 있는 해다. 거기다가 거국내각이니 이원집정제니 하는 논란에 레임덕이 조기화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1987년 이후 가장 높아졌다. 대선까지는 아직 13개월여나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나 금리 인상을 포함해 잠재적 위험 요인은 산재해 있다. 만약을 대비해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여야 정치권이 적어도 경제문제에서는 위기 요인을 주시하면서 방어태세를 튼튼히 해주기 바란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