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로비에 인허가 특혜 의혹…키맨 이영복 또 잠적

해운대해수욕장 코앞에 최고 101층으로 지어지는 주거복합단지인 엘시티(LCT) 시행사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부산이 시끄럽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은 엘시티 시행사 최고위 인사이자 실소유주로 알려진 이영복(66·공개수배 중) 회장이다.

이씨는 공식적으론 시행사에서 아무런 직함도 없지만, 오너로서 엘시티 사업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500억원이 넘는 비자금 조성도 사실상주도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부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

이씨가 핵심인물로 등장하는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사건과 엘시티 비자금 조성 의혹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규제 '패스'…불거진 특혜 의혹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은 이씨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사들인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임야(자연녹지) 42만2천여㎡가 뚜렷한 이유 없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일반주거용지(대지)로 용도 변경된 것이다.

이씨는 해당 터를 헐값에 사들인 뒤 96년 2월 당시 주택사업공제조합과 아파트 6천500가구를 짓는 내용의 동업계약을 맺으며 전체 땅의 50%를 되팔아 최소 1천억원의 시세차액을 챙겼다.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가 일사천리로 일반주거용지로 용도가 바뀐 것으로 두고 이씨의 로비로 정관계 인사들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주택사업공제조합은 당시 직접 주택사업을 할 수 없도록 한 정관을 고쳐가면서까지 이씨와 동업을 추진했고, 공식 감정도 하지 않고 3배 가까운 가격에 이씨로부터 땅을 사들여 850억원대의 손실을 유발했다.

부산시도 당초 임야 원형을 보존하기로 했던 다대지구를 '택지난 해소' 명목으로 일반주거용지로 용도 변환해줬다.

부산시는 1997년 다대지구에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승인하면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고 고도제한 규정도 어겨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씨의 금품 로비설과 함께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압력설이 난무했다.

당시 부산시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특혜 의혹과 로비설이 지적돼 검찰의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엘시티 사업추진 과정에서도 부산시와 지역 유력 인사들의 압력설이 일었다.

엘시티는 2006년 11월 부산시가 관광특구인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온천센터 예정지를 도시개발구역으로 고시하면서 부각됐다.

부산도시공사는 2007년 6월 호텔과 콘도 같은 상업시설만 짓는 조건으로 민간사업자를 모집했고, 이씨가 회장으로 있는 청안건설 등 20여곳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땄다.

상업시설로는 돈이 되지 않아 고급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컨소시엄 측에서 나왔다.

그러나 엘시티 터 일부가 중심지 미관지구여서 아파트를 지을 수 없었다.

그러자 부산시는 2009년 12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엘시티 전체 터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일반미관지구로 바꿔줬다.

엘시티 사업대상 일부 지역은 건물 높이를 제한하는 해안경관 개선 지침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또 다른 걸림돌이었다.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또 해안경관 개선 지침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 아무런 높이 제한을 받지 않고 아파트가 포함된 초고층주거복합단지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엘시티는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도 없이 사업계획이 승인돼 정관계 로비설이 증폭됐다.

부산 건설업계와 정관계에서는 이씨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복수의 국회의원과 전·현직 부산시청 고위인사가 엘시티 인허가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 17년 전 잠적했다가 자수한 이 회장, 또 잠적…수사 난관
1996년부터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의혹이 불거졌지만, 당시 검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9년 11월 수배령이 떨어지자 이씨는 도피했고, 2년여 만에 자수했다.

당시 부산시청 고위 관료와 정치권 인사들이 이씨에게서 금품을 받고 용도변경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파다했지만, 이씨는 수사기관에서 입을 끝까지 다물었다.

당시 검찰 수사 핵심은 사용처가 불분명한 이씨의 돈 68억원의 행방이었다.

건설업계와 정관계에서는 이씨가 이 돈으로 토지용도변경과 아파트 인허가를 쥔 공무원과 이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관계 고위인사에게 로비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씨가 2년여 만에 자수하자, '이씨에게서 부정한 돈을 받은 인사들이 떨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씨는 끝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후 "이 회장은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돈을 받아도 뒤탈이 없다.

형을 다 살고 나오면 다시 사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웃지 못 할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씨는 배임과 횡령 등 9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2002년 10월 있었던 항소심에서 상당수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올해 7월 21일 서울과 부산에 있는 엘시티 시행사와 이씨가 실소유주인 건설업체, 분양대행업체, 건설사업관리용역업체, 설계용역회사 등 사무실 여러 곳과 시행사 고위인사들의 자택 등지를 압수수색하면서 엘시티 시행사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검찰은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핵심인물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고 나서, 8월 초 이 회장에게 소환통보를 했지만, 이 회장은 소환에 불응한 채 17년 전처럼 도피해 잠적해버렸다.

검찰은 이 회장을 지명수배와 함께 출국 금지하고 자체 수사력으로 검거전담반까지 꾸려 두 달 넘게 행방을 쫓았지만, 검거하지 못하자 27일 이씨를 전국에 공개 수배하기에 이른다.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 규명 등 검찰의 엘시티 수사의 키를 쥔 이 회장이 잠적하는 바람에 검찰 수사는 두 달째 큰 진전이 없다.

이례적으로 흉악범이 아닌 이씨를 공개 수배한 검찰은 시민 제보로 이른 시일 내 이씨를 검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대·만덕 특혜 의혹 사건에서처럼 이번에도 이씨가 5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해 어디에 썼는지가 검찰 수사 핵심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부산시 등 고위 공무원과 정계 유력인사들이 엘시티 인허가에 부당한 힘을 썼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달 11일 있었던 국회의 부산지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두 사건의 유사점을 지적하며,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검찰은 이씨를 검거하고 나서 구속수사해 비자금 조성·횡령, 사기대출, 정·관계 로비 의혹 등 범죄 혐의 전반을 엄정하게 수사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씨를 언제쯤 검거해 혐의를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와 이씨가 재판에서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osh998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