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 우려해 만찬 간담회 일정 잡지 않거나 줄여…참석 불가피하면 '각자내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시·도지사들의 '밤 문화'가 바뀌고 있다.

근무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과가 끝난 후 밤늦게까지 '쌍방향 소통'을 위한 만찬 간담회를 열었던 게 관행이었다.

현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거나 시·도정 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다.

선출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주민들과의 접촉을 늘려 자연스레 표심을 확보할 수 있는 일종의 '현역 프리미엄' 혜택도 누려 왔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전격 시행된 김영란법이 시·도지사들이 발목을 잡았다.

수행비서 수첩을 빼곡히 채웠던 만찬 일정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주민들에게 식사를 아예 제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만찬 간담회를 무작정 피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현행법상 적법한 '각자 내기'로 돌파한다.

낮 시간대에, 그것도 식사 시간을 피해 간담회 개최를 준비하는 시·도지사도 있다.

시·도지사들이 '김영란법 시대'를 맞아 올빼미형에서 탈피, 아침형이나 대낮형으로 변신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만찬을 했다.

공식적인 만찬도 있고 개인적인 저녁 자리도 있었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공식행사 외에 만찬 일정을 아예 잡지 않았다.

이달 중에는 '2016 광역 두만강 개발계획 국제 무역투자 박람회' 환영·환송 만찬과 지구촌 새마을지도자대회 만찬, 각자 내기 캠페인을 위한 도 단위 기관·단체장 만찬 등 5개가 전부다.

최 지사는 일과 중 간담회를 열거나 간단한 오찬 위주로 공식 일정을 소화하며 도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만찬 일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도정 운영 관련 협조를 구하고 각종 아이디어를 구할 기관·단체장,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을 일과 중 소화하기로 했다.

이 지사 비서실 관계자는 "허심탄회한 쌍방향 소통이 만찬의 장점이지만 식사 시간을 피해 간담회를 열어도 도민 의견을 수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광역단체장은 아니지만, 이재명 성남시장도 저녁 자리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외부 식당에서 열던 행사를 구내식당에서 열기도 한다.

성남시 관계자는 "대권 도전의 뜻을 밝힌 이 시장으로서는 만찬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김영란법에 저촉될 듯한 자리는 피하고 있다"며 "만찬 일정이 1주일에 2회 정도에 그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윤장현 광주시장도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식 만찬 일정을 아예 잡지 않았다.

'각자 내기'를 원칙으로 정한 시·도지사도 있다.

시·도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만찬 참석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부득이 만찬을 해야 할 경우에는 사안별로 감사위원회를 통해 현행법 저촉 여부를 판단한 뒤 일정을 잡고 있다.

명확한 답변이 없을 때는 참석자들의 양해를 구한 뒤 '각자 내기'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충남도 관계자는 "간담회에 참석하는 주민들도 김영란법을 잘 알고 있어 대부분 각자 내기에 동의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전남지사도 만찬 횟수를 대폭 줄였지만 필요한 행사에는 참석하되 '각자 내기'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이달 초 정례 직원조회 때 "김영란법은 청렴 사회로 가기 위해 대인 간의 거리를 적정화하는 문화의 큰 흐름"이라며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일 목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세계 호남인의 날' 행사 때 김영란법이 허용하는 3만원짜리 음식을 제공받았지만 개인 신용카드로 그 비용을 결제했다.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인 '행정 소통'을 강조하는 시·도지사도 있다.

일종의 '정면돌파형'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빠듯한 외국 출장일정 탓에 김영란법 시행 이후 간담회를 한 적은 없지만, 만찬 일정을 굳이 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 시장은 직원들에게도 "행정 업무 수행이 김영란법으로 인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인 행정을 수행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는 자신이나 공무원 모두 시민 의견을 적극 수렴, 시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공관에서 주로 여는 오찬·만찬 일정을 조정하지는 않았지만, 쇠고기 메뉴를 닭가슴살로 대체하고 저렴한 가격의 와인을 내놓는 등 나름 소박한 식단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직접 주최하는 만찬이 거의 없었지만, 부득이 만찬을 해야 할 때는 식사 금액 등을 검토한 후 적절한 수준에서 하기로 했다.

(손상원, 심규석, 이재혁, 임보현, 최찬흥, 한종구, 홍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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