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D-2] "란파라치 표적 될라"…'공직' 줄줄이 반납하는 기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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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조차 모르는 '공무수행사인' 부지기수
"회사로 위험 번질라"…기업인 대학이사 거취 고민
국민연금투자심의위원회, '교수 일색'으로 변질 우려
민간 목소리 담기 위해 만든 정부위원회 애초 취지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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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증권사 국내법인 대표인 A씨는 외환 전문가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해운항만청 등 세 개 공공기관의 리스크관리위원으로 위촉됐다. ‘잘나가던’ A대표는 얼마 전 모든 정부 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본사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사퇴하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연기금, 대학 등에서 자문 역할을 맡은 민간 기업인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무수행사인(私人·민간인)에 해당하는 이들이 워낙 많지만 정작 당사자조차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인들 줄줄이 공직 ‘반납’
대학 재단들은 기업인 이사가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재단 이사직과 연관된 분야’만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라고 하지만 자칫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면 기업 전체로 위험이 번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려대만 해도 재단 이사진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 박병엽 팬택C&I 부회장, 유광수 여성병원 원장 등 현직 기업인이 많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 이사로 재직 중인 연세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앙대에서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 등이, 성균관대에선 정유성 삼성SDS 사장,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 이현구 까사미아 사장 등이 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대학 측에 사퇴 의사를 밝혔거나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란법은 산학협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기업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연구 및 강의를 하는 겸임교수도 공무수행사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김우승 한양대 에리카(안산캠퍼스) 링크사업단장은 “기업인이 자신의 본연 업무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하면 김영란법 적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학에 도움을 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 확대 해석, 민관 협력 해칠라
정부도 고민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표준심의회(국가기술표준원 산하),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등에 기업인이 다수 포함돼 김영란법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KS 등 산업표준 제·개정을 최종 결정하는 산업표준심의회는 기업인,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가 모여 합의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20명의 위원 중 4명뿐인 기업인 위원을 더 늘리려고 하는 상황에서 도리어 기업인이 빠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기업인 탈출 러시’에 비상이 걸렸다. 읍·면·동마다 있는 주민자치위원부터 공직자윤리위원, 도시계획위원, 건축심의위원, 주민센터복지협의체위원 등 법령·조례·규칙 등에 따라 설립한 각종 위원회에 속한 민간인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위원회는 민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공직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투자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마다 민간 기업인을 참여시켰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존 위원회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다.
법조계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직자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학교운영위원이나 학부모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평범한 가정주부도 법 적용 대상자가 될 수 있어서다.
■ 공무수행사인
민간인(私人·사인)이지만 공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 정부 부처가 설립한 위원회에 참여하는 교수, 금융인, 변호사 등 전문가와 정부의 기금 업무를 수탁하거나 외환 관련 업무를 하는 금융회사 직원도 공무수행사인에 해당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김영란법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연기금, 대학 등에서 자문 역할을 맡은 민간 기업인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무수행사인(私人·민간인)에 해당하는 이들이 워낙 많지만 정작 당사자조차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업인들 줄줄이 공직 ‘반납’
대학 재단들은 기업인 이사가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재단 이사직과 연관된 분야’만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라고 하지만 자칫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면 기업 전체로 위험이 번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려대만 해도 재단 이사진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 박병엽 팬택C&I 부회장, 유광수 여성병원 원장 등 현직 기업인이 많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 이사로 재직 중인 연세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앙대에서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 등이, 성균관대에선 정유성 삼성SDS 사장,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 이현구 까사미아 사장 등이 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대학 측에 사퇴 의사를 밝혔거나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란법은 산학협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기업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연구 및 강의를 하는 겸임교수도 공무수행사인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김우승 한양대 에리카(안산캠퍼스) 링크사업단장은 “기업인이 자신의 본연 업무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하면 김영란법 적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학에 도움을 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 확대 해석, 민관 협력 해칠라
정부도 고민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표준심의회(국가기술표준원 산하),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등에 기업인이 다수 포함돼 김영란법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KS 등 산업표준 제·개정을 최종 결정하는 산업표준심의회는 기업인,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가 모여 합의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20명의 위원 중 4명뿐인 기업인 위원을 더 늘리려고 하는 상황에서 도리어 기업인이 빠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기업인 탈출 러시’에 비상이 걸렸다. 읍·면·동마다 있는 주민자치위원부터 공직자윤리위원, 도시계획위원, 건축심의위원, 주민센터복지협의체위원 등 법령·조례·규칙 등에 따라 설립한 각종 위원회에 속한 민간인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위원회는 민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공직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투자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마다 민간 기업인을 참여시켰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존 위원회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다.
법조계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직자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학교운영위원이나 학부모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평범한 가정주부도 법 적용 대상자가 될 수 있어서다.
■ 공무수행사인
민간인(私人·사인)이지만 공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 정부 부처가 설립한 위원회에 참여하는 교수, 금융인, 변호사 등 전문가와 정부의 기금 업무를 수탁하거나 외환 관련 업무를 하는 금융회사 직원도 공무수행사인에 해당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