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는 빈병 보증금만 한 해 600억원에 육박한다"며 "재활용 쓰레기 처리 과정을 자동화로 줄인 비용만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는 빈병 보증금만 한 해 600억원에 육박한다"며 "재활용 쓰레기 처리 과정을 자동화로 줄인 비용만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 이진욱 기자 ] 인공지능(AI)에게 쓰레기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

벤처기업 수퍼빈은 최근 AI 기반 재활용 자판기 '네프론'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재활용 자판기 '네프론'은 재활용 가능한 빈 병이나 페트병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품목별로 분류해 수거하고 현금으로 적립해준다.

네프론은 인공지능 '뉴로지니'를 기반으로 폐기물의 종류를 학습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별한다. 뉴로지니는 알파고와 같은 '딥러닝' 기술을 적용했다. 뉴로제네시스(neurogenesis)의 줄여서 붙인 이름이다. KAIST 권인소 교수와 RCV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휴보'의 인공지능에서 발전된 형태다.

네프론 사업의 핵심은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는 빈병 보증금만 한 해 600억원에 육박한다"며 "재활용 쓰레기 처리 과정을 자동화로 줄인 비용만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네프론이 재활용품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누구나 재활용품을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독일, 미국, 핀란드, 노르웨이 등에서는 재활용 자판기 보급이 활발하다. 한국은 아직 보급 초기 단계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이점을 간파해 지난해 6월 수퍼빈을 창업하고 재활용 자판기 국산화에 매진했다.

수퍼빈은 권인소 KAIST 교수로부터 휴보가 3D 물체를 인식하는 기술을 이전받아 폐기물을 선별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뉴로지니'를 개발, 네프론 적용에 성공했다. AI가 적용된 재활용 자판기는 세계 최초다.

김 대표는 "해외 제품은 바코드를 읽는 형식으로 운영돼 재활용품이 훼손될 경우 인식 오류가 있었다"며 "네프론은 AI 기술을 활용해 용기 인식률이 95% 이상이며 적재량도 수입 제품 대비 120% 수준"이라고 말했다.

수퍼빈은 10월까지 네프론의 전체 디자인을 캐릭터화하고 본격적인 서비스에 돌입할 계획이다. 수퍼빈은 앞으로 지자체 중심으로 협약을 확대하면서 네프론 보급에 주력한다. 또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설치도 추진 중이다.
 재활용 자판기 '네프론'은 재활용 가능한 빈 병이나 페트병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품목별로 분류해 수거하고 현금으로 적립해준다.
재활용 자판기 '네프론'은 재활용 가능한 빈 병이나 페트병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품목별로 분류해 수거하고 현금으로 적립해준다.
김 대표는 "현재 과천시와 협약을 체결해 네프론 10대를 공공기관과 학교 등에 설치할 예정"이라며 "노력 끝에 시제품이 막상 나오니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을 스타트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견 철강기업 코스틸을 이끌던 최고경영자(CEO)였다. 당시 철강업계에서는 40살의 김 대표가 사장직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다. 코넬대, 하버드대에서 수학했다는 점도 시선을 끌었다.

철강업계 생태계 혁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그는 불현듯 무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부터 염원하던 스타트업을 통해 '하고싶은 일'을 갈망했다. 그가 과감히 CEO 타이틀을 버리고 스타트업을 무대로 택한 배경에는 딸의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딸 아이를 보면서 대기업만이 아닌 독립적인 스타트업도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대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꼭 성공해 미래 세대의 긍정적 변화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