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출자전환 확대 양보 가능하나 자금은 자체 마련해야"
한진그룹 "여력 있는데 지원 안하는 것 아냐…방법 찾는 중"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진해운이 '최후의 순간'까지 채권단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한진해운에 대해 채권단과 정부에서 "추가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천명해 온 만큼, 결국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21일 금융권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유동성 확보 방안을 두고 채권단과 한진그룹의 이견은 아직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19~20일까지 자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한진해운은 이 시기가 넘어서도 여전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율협약 종료에 임박해서라도 대안을 내놓는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회사를 살릴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시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내주에는 방안을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앞으로 1년 6개월 동안 1조∼1조2천억원의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유동성 부족으로 연체한 용선료, 항만이용료, 유류비 등의 규모도 6천억∼7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한 자금은 한진해운에서 자체 해결해야 경영정상화에 돌입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하면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채권단의 의견이다.

금융당국 역시 자금 투입 없이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의 선례가 있는 만큼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반대로 한진그룹에서는 4천억원 이상은 마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정부·채권단과 한진그룹 간에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양측이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채권단은 유동성 지원은 불가능하지만, 부채비율을 관리하는 데에는 조금 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양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채무의 60%를 출자전환하고 잔여 채무를 5년 거치·5년 분할상환하는 기존의 채무재조정안도 거의 회생절차 수준에 가까운 파격적인 조건이지만, 출자전환 비율을 더 높여주는 식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출자전환 폭을 늘리는 것은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뿐이고, 유동성 부족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한진 측에서 추가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혈세를 추가 투입할 수 없다는 정부의 원칙 때문만이 아니라, 채권단 차원에서도 자금을 투입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적인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한진해운 역시 경영정상화를 위한 다른 조건들은 대부분 충족시킨 상황이다.

일부 선사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던 용선료 협상은 최근 진전을 이뤄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용선료 인하는 곧 선주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진해운은 또 내달 2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회사채의 만기를 연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앞서 가장 먼저 충족해야 하는 '부족자금 자체 마련'이라는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은 부족자금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진행한 해외 금융사와의 선박금융 유예 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계열사를 활용해 한진해운의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주는 '결단'이 나오느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충분한 자구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다만 자구안을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데드라인은 제시한 바 없으며, 한진 측에서도 법정관리로 가겠다는 사인을 보낸 바는 없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자금 사정에 충분한 여력이 있는데도 지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이지헌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