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중국에서 생산한 한국 기업의 세탁기에 무더기 덤핑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미·중 갈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상무부는 20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각각 111.09%와 49.88%의 반덤핑 예비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최종 확정은 아니지만, 과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중국산 가정용 세탁기 전체에 적용되는 반덤핑 예비관세율은 80.49%다.

이번 예비관세 결정은 미국 가전사 월풀이 지난해 12월 삼성·LG가 중국산 세탁기를 미국 시장에 덤핑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제출한 진정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우리 가전업계는 기본적으로 월풀의 시장 견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삼성과 LG의 북미 세탁기 시장 점유율이 급상승하자 위기감을 느낀 월풀이 정부에 '보호무역주의' 성격의 규제를 요청했다는 해석이다.

월풀은 2011년에도 '한국 기업들이 세탁기를 저가로 판매해 타격을 입었다'며 덤핑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미 상무부는 2013년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로 삼성, LG에 각각 9.29%, 13.02%를 부과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지난 3월 1차 승소했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아직 반덤핑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이지만 예비관세율이 과도하게 책정해 우리 기업에 부담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한국 기업 제품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양국 기업의 경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가정용 세탁기 시장은 전통의 강자 월풀 뒤로 삼성·LG가 매섭게 추격하는 상황이다.

유로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가정용 세탁기 시장은 월풀이 1위(점유율 22.7%), LG전자 4위(11.5%), 삼성전자 5위(11%)였다.

월풀의 점유율은 전년보다 0.1%P 떨어진 반면 LG는 0.3%P, 삼성은 0.3% 올랐다.

삼성과 LG는 이번 미국 상부무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이의를 제기해 적극적으로 소명할 방침이다.

개별 업체의 입장을 넘어 큰 틀에서 봤을 때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 심화로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업체들에까지 불똥이 튀었다는 해석이다.

특히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보호무역 기조가 한층 거세지는 분위기여서 이 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철강도 이미 그 영향을 받았다.

미 상무부는 최근 중국산 냉연강판과 내부식성 철강제품에 각각 522%와 54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에 대해서도 최대 47.8%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대해 대규모 반덤핑 관세를 내리는 과정에서 애꿎은 한국 기업까지 피해를 봤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개방형 통상국이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보호무역주의라고 단정 짓고 대응하기보다는 미국과의 통상에서 실리를 챙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이승환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