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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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48)은 자칭 ‘진품 흙수저’ 출신이다. 지난 3월 넷마블 신입사원 간담회 때 한 사원이 그에게 “의장님은 어떤 수저냐”고 물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낸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초등학교 때는 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여유가 없어서 신문 배달을 하기도 했다”며 자신을 진품 흙수저로 표현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사업가를 꿈꿨다. 고등학교 때 장사에 나섰다가 사기를 당해 나흘 만에 밑천을 전부 날리고 엉엉 울기도 했다. 고등학교는 2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방 의장은 이처럼 어려운 환경을 딛고 넷마블을 매출 1조원이 넘는 국내 1위 모바일 게임회사로 일궈냈다.

연이은 사업 실패에서 얻은 교훈

넷마블을 창업하기 전 방 의장은 두 번의 큰 실패를 겪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는 1998년 인터넷망을 이용한 영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열악한 인터넷 환경 때문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할 수 없어 사업을 접어야 했다.

두 번째 사업도 영화 VOD 서비스였다. 전송 속도가 빠른 위성인터넷 기술을 개발해 재도전했다. 사업을 확장하려면 셋톱박스와 위성수신기 등에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해 자금 조달에 힘썼다. 하지만 2000년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결국 회사 문을 닫았다.

그는 연이은 실패 끝에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벤처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없고, 콘텐츠를 직접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 고민 끝에 발굴해낸 사업 아이템이 게임이었다. 그는 2000년 지인들의 도움으로 자본금 1억원을 마련해 직원 8명의 넷마블을 창업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뒷골목에 마련한 허름한 사무실이 출발점이었다.

넷마블은 테트리스 등 웹보드게임으로 1년 만에 1000만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2001년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유료화를 결정했다. 같은 해 엔터테인먼트 업체 플레너스와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30억원을 투자받아 유료화에 필요한 장비를 구축했다.

당시 계약조건이 특이해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투자 이듬해에 넷마블이 순이익 50억원을 넘겨야 방 의장이 개인 성과급을 받는 조건이었다. 2002년 매출 270억원, 순이익 158억원으로 성과급 기준을 크게 웃도는 실적을 냈다. 세금을 제외하고 받은 보너스 31억원을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나눠줬다.

넷마블은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방 의장은 더 큰 성장 기회를 엿보기 위해 2004년 CJ에 800억원에 지분을 넘기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창업 이후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져 2006년엔 아예 은퇴를 선언했다.

모바일로 새 판 짜서 ‘대박’

[비즈&라이프] 방준혁, '중환자실'에 있던 넷마블 매출 1조로 키워
‘방준혁 없는’ 넷마블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온라인 게임 신작이 연이어 실패하고 2010년 인기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 서비스권마저 넥슨에 뺏겼다. 당시 넷마블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조직 전체가 패배의식에 빠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2011년 6월 넷마블의 모기업인 CJ E&M은 방준혁을 ‘구원투수’로 불러들였다. 그는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중장기 사업전략을 짰다. 당시 스마트폰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모바일 게임이 주목받기 시작하던 때였다. 완전히 새 판을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온라인 게임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모든 역량을 모바일에 집중했다.

방 의장은 복귀 직후 주변에 “연매출 1조원대 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넷마블 매출은 2000억원 수준으로 대부분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는 2013년까지 1주일에 두 번만 집에 들어가며 일에 빠져 살았다. “자식 같은 넷마블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복귀했죠. 회사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모바일 게임이 성장판이 될 것이라는 방 의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2013년 ‘다함께 차차차’를 시작으로 ‘몬스터 길들이기’ ‘모두의마블’, 2014년 ‘세븐나이츠’ 등 히트작을 연이어 탄생시키며 매출이 급성장했다. 직원들도 자신감이 붙었다.

넷마블은 2015년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게임업체 중 넥슨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조원 고지에 올랐다. 현재 국내 양대 앱(응용프로그램) 마켓인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매출 10위 안에 있는 게임 중 절반가량이 넷마블 게임이다.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

넷마블은 이제 글로벌 게임업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14년 중국 텐센트에서 5300억원을 투자받아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 및 중국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와의 지분 맞교환으로 리니지, 아이온 등 탄탄한 저작권 제휴에 성공했다. 같은 해 북미에서 주목받는 게임사 에스지엔(SGN)을 인수했다. 내년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넷마블은 최근 몸값 4조원으로 평가받는 세계 1위 카지노게임 업체 ‘플레이티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넷마블은 지난달 방 의장이 나고 자란 서울 구로구에 4000억원을 들여 신사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2005년 강남에서 구로로 이사한 넷마블은 이 지역에서 11년을 보냈다. 주변에 쉼터가 부족한 점을 감안해 부지 70% 이상을 지역 주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방 의장은 “가난한 기억이 많아 돌아오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운명적으로 여기서 넷마블과 함께 성장했다”며 “사옥을 지어 지역 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는 데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39세”

게임업계에서 방 의장은 뛰어난 사업 감각을 지닌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넷마블 관계자들은 “최신 트렌드를 재빠르게 포착해 게임에 적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수용한다. 넷마블은 국내외 게임 및 산업 동향을 짚어보는 ‘게임트렌드포럼’을 주 1회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최고경영자부터 신입사원까지 100여명이 매주 참석한다. ‘몬스터 길들이기’ ‘세븐나이츠’ 등 대표 히트작이 여기서 준비한 작품이다. 방 의장은 사석에서 “(대체로 연령대가 낮은) 게임 이용자 관점에서 평가하기 위해 내 나이는 항상 39세라는 자세로 게임을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신입사원의 참신한 시각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넷마블 신작 게임은 기존 품질관리(QA) 과정과 별도로 서비스 품질조사(SQC)팀의 검수를 거쳐야 한다. 10여명으로 구성된 SQC팀에는 20대 신입사원만 참여시킨다. 이들의 평가는 단순 참고용이 아니다. 여기서 높은 점수를 얻고 좋은 의견을 받은 게임만 출시한다. 넷마블 관계자는 “SQC팀 신입사원들은 방 의장이 참석하는 게임 검수회의에도 들어와 임원들이 말하기 힘든 솔직한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 방준혁 의장 프로필

△1968년 서울 출생 △1998~2000년 아이링크커뮤니케이션 사업담당 이사 △2000~2003년 넷마블 대표이사 △2003~2004년 플레너스 사업전략담당 사장 △2004~2006년 CJ 인터넷 사업전략담당 사장 △2011~2014년 CJ E&M 게임부문 총괄상임고문 △2014년~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

유하늘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