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승인으로 경쟁제한성 해결 어렵다고 판단…결국 초강수 결정
기업결합 불허사례 총 8건으로 극히 적어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불허' 조치를 내린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이 관심을 모은다.

공정위는 통상 기업결합에 대한 경쟁제한성 검토 과정에서 경쟁시스템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를 내놓을 뿐 '승인'이나 '조건부승인' 등의 결정은 내리지 않는다.

다만 시정조치만으로 경쟁제한성을 완화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이례적으로 주식취득 금지나 주식 전량 매각 등 사실상 불허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공정위가 이번 SK텔레콤의 인수·합병 심사에서 주식취득 및 합병금지 명령을 내린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즉 일부 사업이나 방송권역 매각 등의 조치만으로 SK텔레콤의 독과점 우려를 충분히 해소할 수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SK텔레콤은 공정거래법 상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 규모가 2조원 이상인 대규모회사에 해당해 주식 취득전에 공정위의 경쟁제한성 심사를 받도록 돼있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 '주식취득 금지' 조치를 명령해 인수·합병을 불허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회사가 아닌 경우 공정위 심사는 주식 취득 이후 사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인수합병을 불허할 때는 '주식 전량 제3자 매각' 등의 조치가 담긴다.

업계에서는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면 시장 독과점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CJ헬로비전의 알뜰폰 가입자는 지난 4월 말 기준 83만 명(점유율 13.2%)이다.

2위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텔링크로 가입자 81만 명(점유율 12.9%)을 확보하고 있다.

방송권역의 독과점 폐해 우려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이 합쳐지면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경쟁제한'이 발생하는 방송권역은 전체 23곳 가운데 15곳 이상으로 추정된다.

경쟁제한 지역의 가입자 수는 CJ헬로비전 전체 가입자 415만 명(2월 말 기준)의 7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의 이번 불허 결정은 공정위가 7개월여간 장고를 거듭했다는 점에서 더욱 당황스럽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공정위의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안 심사 일수는 217일이다.

심사일수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업계에서는 사실상 승인이나 불허 등 극단적인 결정보다는 경쟁제한성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지금까지 공정위가 기업결합 신고를 최종 불허한 사례는 총 8건이다.

동양화학공업의 한국과산화공업 인수(1982년), 송원산업의 대한정밀화학 인수(1982년), 동양나이론의 한국카프로락탐 인수(1996년), 무학의 대선주조 인수(2003년),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2004년), 동양제철화학의 콜럼비안케미컬즈컴퍼니 인수(2006년), 오웬스코닝의 상고방베트로텍스 인수(2007년), 에실로의 대명광학 인수(2014년) 등이다.

공정위가 매년 500여건의 기업결합 심사를 하고 이중 상당수는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없어 아무런 경쟁제한성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숫자다.

불허 사례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합병 심사다.

공정위는 2004년 9월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인수하면 사실상 독점이 된다고 판단하고 삼익과 그 계열사가 사들인 영창악기 지분 전량을 1년 내 제3자에게 처분할 것을 명령했다.

삼익악기는 공정위의 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으로 맞섰지만 2006년 법원은 공정위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해 결국 삼익악기는 취득한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호텔롯데의 파라다이스글로벌 면세점 인수(2009년)와 호주 철광석 업체 BHP빌리턴과 리오틴토의 합작회사 설립(2010년) 등 2건은 공정위 또는 각국 경쟁당국이 불허 방침을 시사하자 인수·합병 기업 측에서 기업결합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공정위 사무처의 '불허' 결정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시장의 효율성보다 독과점 견제 정서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지적이다.

방송·통신 시장의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기업들의 선제적인 구조 개편은 어려울 것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다만 공정위 사무처의 불허 결정은 이르면 2주 뒤에 열릴 전원회의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SK텔레콤은 공정위 사무처의 심사보고서에 대한 반론을 준비해 전원회의에서 사무처와 공방을 벌이게 된다.

공정위 상임위원들은 사무처의 심사보고서와 SK텔레콤의 반론을 들은 뒤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roc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