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상당수 기업의 사무실엔 풋풋한 기운이 돈다. 공개채용을 통과하고 연수를 마친 신입사원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회사생활에 찌든 샐러리맨들에게 신입사원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다. 신입사원이 회사라는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은 대체로 순탄치 않다. 선배들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를 일이 생기는 때가 많다. 반대로 부서에 갓 배치받은 신입사원들이 천방지축 사고를 치고 다니면, 선배들 입장에서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회사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쳐보지만, 길들이기가 만만치 않다. 신입사원 배치 후 요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金과장 & 李대리] 팔에 링거 꽂고 출근한 신입사원, '몸살투혼' 그 마음은 가상하지만…
곤혹스러운 선배들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박 과장(37)은 얼마 전 입사한 A사원(28)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며칠 전 회식을 마치고 나오다가 A사원은 손가락을 삐었다. 술에 취해 택시를 잡으려고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다. 문제는 이튿날부터 발생했다. A사원은 “오전에 잠시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바로 윗선배에게 보낸 뒤 오후 2시가 돼서야 회사에 나타났다.

다음 날엔 선배들이 모두 출근한 뒤 오전 9시를 훌쩍 넘겨 나타났다. “왜 출근이 늦었냐”는 박 과장의 물음에 A사원은 “손가락이 아파 씻는 데 오래 걸렸다”고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 나쁜 소문이 돌까봐 후배에게 따끔하게 지적하는 선배가 많지 않아요. ‘신입사원은 출근을 팀장이나 선배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것도 옛날 얘기가 돼 버린 거 같습니다.”

눈치 없는 신입사원 때문에 난감한 선배들도 많다. 한 대기업 계열사 영업팀 김 대리(32)는 연초 팀에 들어온 B사원(27)의 멘토를 맡고 있다. 팀에 배치받고 1주일이 지난 뒤 B사원은 “몸살이 났다”며 팔에 링거를 꽂고 출근했다. ‘몸살투혼’이 가상한 측면도 있었지만, 김 대리는 B사원 때문에 팀장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휴가를 쓰게 하든지 어서 조치를 취하라”는 핀잔이었다. B사원은 “신입사원은 휴가를 못 쓰는 줄 알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B사원은 최근 있었던 팀 워크숍에서도 사고를 쳤다. 평소 보수적인 팀장은 “팀원 서로 간 장단점에 대해 직급을 내려놓고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첫 타자로 나선 B사원은 선배들로부터 전해 들은 팀장의 평판에 대해 얘기하면서 “팀장님의 보수적인 성향에 문제가 있다는 게 팀원들의 생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재미로 시작한 이날 워크숍은 팀장의 어색한 웃음, 헛기침과 함께 끝났다.

할 말 있는 신입사원들

신입사원들도 할 말이 있다. 최근 한 화장품 회사 재경팀에 배치받은 C사원(27)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선배들의 요구에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C사원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술 문화’다. 신입사원 환영회식에서 몸이 안 좋아 한약을 먹고 있던 그에게 모든 부서원이 입을 모아 술을 권했다. C사원은 이날 “몸이 안 좋아 술을 한 잔도 마실 수 없다”며 버텼다. 끝내 술을 거절한 그는 이후 한동안 그날 어색했던 분위기에 대해 “왜 그랬느냐”며 선배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신입사원을 각종 가욋일에 동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마케팅 전략회의에 매주 참석하고 있다. C사원은 “재경팀 일도 배우기 바쁜데 부서와 관련 없는 일을 시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바로 윗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그랬다’는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C사원은 지금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이런 일을 하려고 취업준비를 했던 것은 아닌데 씁쓸하다”며 “최근 입사한 대학 동기 일부도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가려고 하는데, 나도 퇴사 뒤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종 내 대기업 생산관리 부서에서 업무를 시작한 D사원(26)은 체력이 약해 학생 때부터 쉽게 피로를 느끼는 체질이다. 그는 요즘 팀장은 물론 그룹장에게까지 눈총을 받고 있다.

D사원은 남성 직원이 90% 이상인 이 회사에서 수년 만에 처음 채용한 여성이다. 성격이 싹싹하고, 신입사원 연수 때 우수한 성적을 거둬 회사 내에서 ‘연수가 끝난 뒤 어느 부서에 배치받을까’ 관심이 많았다. 문제는 그가 아무 때나 꾸벅꾸벅 조는 데 있었다. D사원은 입사 후 처음으로 참석한 오전 팀회의에서 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계속 졸았다. “많은 남자직원이 보는 앞에서 여자인 제가 시도 때도 없이 조는 모습을 보이고 싶겠어요. 체력보충을 위한 약을 먹기도 하고, 짬을 내 열심히 운동도 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윗분들이 타박만 해 힘들어요. 주변에 고민을 호소할 여자 선배가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래도 신입사원은 회사의 희망

회사생활이 익숙한 선배들이 보기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은 많이 모자라 보일 수밖에 없다. 잘 가르쳐보기 위해 때로는 질책도 하고, 때로는 칭찬도 한다. 열정이 넘치는 신입사원에게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크다.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30)는 “3월만 되면 신입사원들이 내는 남다른 아이디어에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4월에 현업부서 배치를 받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매년 3월 ‘제품 개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연다.

이 회사는 수상자들의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과 프로세스 개선에 반영한다. 작년에는 신입사원들이 아이디어를 낸 ‘라이스 푸딩’을 시장에 내놓았다. 김 대리는 “현재 공모전에 나온 아이디어를 두고 심사위원들이 최종 심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제품화될지 다들 기대가 많다”고 설명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