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오른쪽)이 15일 구글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결을 마치고 대국했던 바둑판에 서명한 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에게 선물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이세돌 9단(오른쪽)이 15일 구글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결을 마치고 대국했던 바둑판에 서명한 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에게 선물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알파고는 아직은 인간이 도전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대국을 원 없이 즐겼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마지막까지 겸손했다. 이 9단은 15일 열린 최종 5국에서 280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대국 후 기자회견에서 이 9단이 의연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 외신 기자들도 박수를 보냈다. 이 9단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쉽지만 더 연구해서 이번 대국을 계기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 알파고는 명예 9단 > 한국기원이 15일 이세돌 9단을 제치고 우승한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에 수여한 특별 명예 9단증. 한국기원 제공
< 알파고는 명예 9단 > 한국기원이 15일 이세돌 9단을 제치고 우승한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에 수여한 특별 명예 9단증. 한국기원 제공
그는 “(알파고가) 상수(上手)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다섯 판을 뒀지만 인간이 아직 해볼 만한 수준이며 그런 점에서 (오늘 패배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실력으로 (알파고의) 우위를 인정하지 못하지만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끝없이 집중하는 부분은 사람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9단은 “바둑은 프로기사든 아마추어든 즐기는 것이 기본”이라며 “어느 순간부터 바둑을 즐기고 있나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이번 대국은 원 없이 즐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날 이 9단은 불리함을 알고도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국에서 자청해 흑을 잡았다. 승패를 떠나 프로기사의 자존심을 걸고 자신의 바둑을 마음껏 펼쳐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은 예상을 깨고 컴퓨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계산으로 승부를 이끌었다”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5국에선 다섯 차례의 대국 중 가장 긴 4시간59분의 혈투가 펼쳐졌다. 이 9단의 분위기는 지난 대국들과는 달랐다. 4국에선 초반부터 장고(長考)를 거듭하며 많은 시간을 소모했지만 5국에선 주저하지 않고 세를 펼쳐나갔다. 초반 흑백이 각각 실리와 세력을 추구하며 팽팽하게 어울렸던 승부는 중반 이후 알파고가 중앙에 거대한 집을 형성하며 미묘하게 알파고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이 9단은 자신의 주특기인 ‘흔들기’를 꺼내들었다. 이 9단은 101과 103수로 ‘원투펀치’를 날리며 알파고의 중앙 집을 깨기 위해 나섰다. 이 9단의 적극적인 공격에 알파고는 이날따라 장고를 많이 했다. 이 9단이 주어진 시간을 다 썼을 때 알파고도 약 19분의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시간이 넘게 남았던 4국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알파고는 수읽기에 몰린 사람처럼 후반으로 갈수록 시간벌기에 나섰다. 160수 안팎이 그랬다.

이 9단과 알파고는 이날 대국 종반까지 팽팽한 형세를 유지하며 피말리는 끝내기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알파고의 계산력은 종반으로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이 9단은 결국 돌을 거뒀다. 김성룡 9단은 “1국부터 3국까지 이세돌의 승부사적 면모를 봤다면 4·5국에서는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봤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 9단에게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AP통신은 “다섯 번째 대결은 이 9단이 최선을 다한 가장 멋진 경기”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아름답고 역사적인 경기들이었다”고 평가했다. AFP통신은 “‘인간 대 기계’의 승부가 전 세계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한국기원은 이 9단과 구글 딥마인드 팀에 특별한 선물을 증정했다. 4국을 인상적으로 본 한 바둑 팬이 승패를 가른 78수를 넣어 만든 넥타이다. 한편 이 9단은 1~5국 대국료 15만달러, 4국 승리 수당 2만달러 등 모두 17만달러(약 2억230만원)를 받았다.

최만수/김보영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