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RI 경영노트] 저성장 위기에 주목해야 할 '톱다운 경영'
105년 역사의 히타치가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3000억엔이 넘는 이익을 내며 일본의 대표적 B2B(기업 간 거래) 기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그 비결로 과감한 알짜 사업 매각, 파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발빠른 사업 재편 등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원동력은 과감하고 독한 톱다운(top-down·하향식) 경영이다.

창의와 혁신이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는 요즘, 보텀업(bottom-up·상향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트렌드를 고려하면 히타치의 톱다운 경영은 새삼 주목할 만하다.

톱다운과 보텀업은 반대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상호 보완재에 가깝다. 톱다운이 전략에 관한 것이라면, 보텀업은 전술 또는 문화와 같은 것이다. 고비마다 강력한 톱다운 드라이브로 혁신을 거듭해온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조차 “직원들이 최고경영자(CEO)만 쳐다보느라 그들의 엉덩이는 고객을 향하고 있다”며 톱다운만으로 조직을 올바로 이끌기 어려움을 표현했다.

위기 극복이나 변화가 절실한 기업이라면 우선적으로 톱다운 경영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 2009년 CEO에 취임해 히타치의 위기 돌파를 이끈 가와무라 다카시는 “위기 속에서의 성장 전략은 고통이 따르는 결단을 수반한다. 아래서 위로 진행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야구경기를 보면 위기의 순간이나 경기 흐름의 반전이 절실할 때 감독은 ‘자율야구(보텀업)’ 대신 ‘작전야구(톱다운)’를 펼친다. 선수에게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려줌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신 주어진 임무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감독들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겼을 때는 선수들이 잘 (실행)해서 이겼고, 졌을 때는 감독이 잘못 (지시)해서 졌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도 CEO라는 감독과 구성원이라는 선수로 이뤄졌다고 볼 때 이와 다를 바 없다.

저성장기일수록 톱다운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조직의 생존이 달린 이슈일수록 CEO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상위 직위일수록 경험과 지혜뿐 아니라 역할에 따른 책임감 덕분에 더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준다. 둘째, 중간관리자와 실무자들은 고민과 분석보다 즉각 이행을 최우선적으로 요구받기에 보다 빠른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CEO의 의지가 담긴 과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구성원들의 성공에 대한 확신은 톱의 의지에 비례하는 법이다.

톱다운 경영에도 맹점은 존재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독단적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체크와 견제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기에 CEO 자신밖에는 시정할 사람이 없다. 그만큼 조직에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최근 불거진 독일 폭스바겐 자동차의 배출가스 조작 의혹은 이런 취약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톱다운의 맹점 극복은 우리 눈의 맹점 해결 방식에서 팁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평소 맹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순간순간 조금씩 다른 각도를 볼 수 있게끔 끊임없이 눈동자를 움직임으로써 엄청난 양의 시각 정보를 빠르게 생산해내고, 두뇌 활동이 이를 분석 종합해 빈 부분을 마치 보는 것처럼 해주기 때문이다.

톱다운 경영에도 CEO의 판단과 결정을 도와주고, 즉각 실행이 이뤄지도록 발로 뛰는 ‘핵심 그룹’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예컨대 전략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확고한 성공 신념 아래 보다 활발한 소통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CEO에게는 가감 없는 조언과 도전적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핵심 그룹이 폐쇄적 이너서클(inner circle)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선도자(change agent)가 될 수 있느냐에 톱다운 경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기에 조직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보텀업보다 톱다운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톱다운 경영은 불평과 원망을 듣기 쉽기에 리더에게 달갑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리더십은 인기가 아니라 성과”라고 했던 피터 드러커의 충고를 더 깊이 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