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자사주는 '살자株'인가, '자살株'인가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대한 이어령 선생의 분석은 치밀하다. ‘강변 살자’란 두 단어에서 한국인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치열한 의지를 캐낸다.

국제경제 동반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 살자’는 처절하다. 조선사의 ‘해변 살자’, 생명보험사의 ‘저금리 살자’는 애조(哀調) 수준이다.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은 무력감과 함께 확산된다. 주문 생산은 경기가 살아나 주문에 숨통이 트여야 살아난다.

파국으로 치닫기까지 기업의 대비는 허술했다. 왜적보다 조정 눈치 살피기가 더 힘들었던 이순신 장군 같은 형편이었다. 돈 벌어 직원 월급 한 푼 나눠준 경험이 없는 정치세력과 일부 지식인이 기업 재무구조를 난도질했다. 부채 감축을 압박하다 순환출자 조이기로 바꿨다가 괜스레 지주회사 띄우기로 돌아섰다. 자기 돈이 남아 있을 리 없는 대주주는 회사 돈으로 재주넘으며 규제 화살을 피했다. 기업마다 규제와의 전쟁을 위해 최우수 인재를 재무팀에 징발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갈 힘은 쓸데없이 소진됐다.

재주넘기 중 그랑프리는 ‘자사주’다. 자사주는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자기 재산으로 취득해 보유하는 상법상 자기주식’을 말한다. 돈을 받고 발행한 주식을 되샀으니 발행을 취소한 셈이다. 그러나 소각되기 전엔 발행주식 수에 그대로 포함된다. 자본총계 계산에선 차감되지만 ‘발행주식의 액면총액’인 자본금은 그대로다.

자사주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은 심각하다. ‘회사 대표나 사외이사가 자사주를 샀다’는 생뚱맞은 보도가 범람한다. 자사주는 회사 주식을 회사가 사는 것이다. 임직원이 사는 것은 자사주가 아니다.

자사주는 이익 재원으로 취득해 감자절차에 따른 소각이 정상 코스다. 주가 침체가 지속되면 해외펀드의 자사주 매입 압박이 가중된다. 회사가 매입에 나서면 해외펀드는 순식간에 팔아치운다. KT&G는 담배사업 성격상 이익 상당부분을 현금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소각에 사용한다.

그러나 소각할 생각 없이 주가방어나 다른 목적으로 취득하는 경우도 많다. SK는 지주회사 전환 목적으로 자사주를 샀다.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로 나누고, 자사주는 지주회사에 넘겨 사업자회사를 지배하는 도구로 썼다. 삼성그룹이 주력 계열사 자사주 취득을 늘리는 것은 주주 친화정책이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3세 승계를 위한 지분율 방어 목적이다.

자사주는 납입자본을 환급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재무위험을 가중시킨다. 부실로 쓰러진 회사 중 휴지로 변한 자사주를 잔뜩 껴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금융사 자사주는 건전성에 치명적 손상을 유발한다. 5년 전 구주매출 방식으로 주식을 상장한 삼성생명은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지자 대규모 자사주 취득에 나섰다. 내년 1월까지 7000억원 넘는 규모로 시행하는데 매입이 완료되면 자사주 비중은 8.75%로 치솟는다.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강화하는 국제회계기준 개정이 예고된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는 건전성 비율 추락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다.

일부 야당 국회의원은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의원입법에 시동을 걸었다.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남용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이나 제3자 배정 신주발행 등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방어수단이 대부분 차단된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땜질식 틀어막기보다는 기업재무규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자사주를 감안한 실질자본 기준의 신용평가를 통한 견제가 최선이다.

최근 뉴욕증시에서 12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나이키 사례가 표준적이다. 5년 동안 매출은 두 배, 순이익은 세 배로 끌어올린 힘으로 자사주 매입계획을 발표하자 주가는 5% 넘게 상승했다. 규제가 혁파된 자율의 강변에서 기업이 살게 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