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문재인, 상대방 실명 거론하며 격한 감정싸움
첫날 오전부터 野 '교과서 의총'으로 상임위 지연
교과서·예산연계시 파행·공전…'식물국회' 가능성

내년도 대한민국의 살림살이를 결정할 국회 예산안 심의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 19일 여야간 신경전이 가파르게 고조되면서 일정 차질이 우려된다.

정부의 단일 역사교과서 추진을 놓고 여야간 공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급기야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상대방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비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김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표가 전날 박근혜 대통령과 자신에게 '친일·독재의 후예'라고 주장한 데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것은 정치의 도를 벗어난 무례"라면서 "거짓주장으로 학부모를 호도하는 문 대표의 거짓 주장 속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마음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표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은 걸핏하면 색깔론을 내세우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면서 "지금이라도 국정화가 무리한 시도였다는 걸 인정하고 중단하길 바란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여야간 격앙된 분위기 속에 정치권에서는 작은 불꽃만 튀어도 폭발할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국회는 이날 정무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외교통일위, 국방위, 산업통상자원위, 환경노동위, 정보위까지 7개 상임위를 열어 2016년도 예산안·기금운용계획안을 심의할 계획이었지만 정보위를 제외하고는 오후가 돼서야 열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오전 역사교과서 대응책을 놓고 의원총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의총에서 교문위 예산 심의는 역사교과서와 연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파행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또 이날 의총에서는 다른 상임위 보이콧도 거론돼 언제든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문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 신당을 추진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1천만 서명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함께 전개하기로 합의를 함에 따라 정국 경색의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야간 대화 분위기도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민생 현안을 함께 논의하기 위한 원내지도부 회담을 제안했지만,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역사 교과서와 (예산을) 연계시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거부했다.

야당은 약 100억원으로 추정되는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를 변경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정부·여당은 예비비라도 활용하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포함한 노동개혁도 핵심 쟁점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두 개 사안과 예산안 통과를 연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국회에서는 예산·입법전쟁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교과서 문제의 경우 정부의 고시로 추진되는 만큼 정치권에서는 여론전만 진행되는 형국이지만 5개의 법률안 개정문제가 걸린 노동개혁에 대한 국회 차원의 논의는 훨씬 더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영향력이 큰 양대 노총의 영향력도 배제할 수 없어 국회의 노동개혁입법 해법은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될 전망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제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인 만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회생과 일자리창출의 핵심으로 지목한 경제 관련 법안도 '복병'이다.

여당은 올해 처리를 재차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예산 정국에서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시기에도 여야간 이견이 뚜렷하다.

야당이 쟁점 현안을 예산 심의에 고리를 걸어 국회 일정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보이콧하고, 장외투쟁으로 나선다면 국회는 공회전 속에 '식물 국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예산결산특별위는 이달 말부터 오는 11월30일까지 감액·증액 심의를 거쳐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해야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다만 예산안의 경우, 지난해부터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개정 국회법에 따라 처리되기 시작해 올해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지키게 될 가능성이 크며 과거처럼 보신각 타종 소리에 맞춰 예산안이 통과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예산안이 기한 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정부 원안대로라도 직권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임형섭 기자 aayy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