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공천제'로 다시 균열…김무성 행보 주목
멀어졌다 손잡기 반복…정치적 고비에선 '협력'
'현재 권력'과 '잠재적 미래 권력' 충돌 불가피 분석도


한동안 순조로웠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관계가 다시 난기류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사이에 김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잠정 합의한 게 발단이 됐다.

예상대로 '왕당파'인 친박(친박근혜)계의 비판이 잇따르더니 급기야 박 대통령이 귀국한 30일 청와대가 이를 '졸속합의'로 규정하며 작심 비판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민심 왜곡 ▲조직선거 ▲세금공천 등의 이유로 들며 김 대표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여당 대표의 행보에 이례적으로 급제동을 건 것이다.

이 같은 청와대의 입장은 여당 의원들에게는 박 대통령의 뜻, 즉 '박심'(朴心)이 고스란히 실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이 간접 화법을 통해 김 대표에게 경고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 오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 내용을 놓고 토론할 예정이었던 의원총회를 앞두고 청와대가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여당 의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로서는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냉담한 반응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여권 최대 주주이면서 최근엔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는 지난 2005년 옛 한나라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이후부터 10여 년간 애증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다가서다 멀어지고 다시 손을 잡는 일이 반복돼왔다.

올해 들어서는 둘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가까워 보인 게 사실이다.

특히 '성완종 파문'의 여파가 계속되던 지난 4월 박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 앞서 김 대표를 불러 국내 상황 수습을 당부한 이후부터는 누가 봐도 '정치적 동반자'로서 손색이 없는 관계로 보였다.

지난 6월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 사퇴 파문 정국에서도 김 대표는 '순망치한'의 관계로 언급됐던 유 전 원내대표 대신에 박 대통령의 조력자로 역할했고, 박 대통령은 그에 보답하듯 7월 미국 방문에 앞서 김 대표와 독대를 하며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 대표는 이후 박 대통령의 숙원 사업인 노동개혁을 위시한 4대 개혁 완수의 선봉에 섰고, 박 대통령의 성공이 정권 재창출의 지름길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결국 김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했던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가 관계 악화의 불씨가 됐다.

사실 '살아있는 권력'인 박 대통령과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차기 권력'으로 거론되는 김 대표의 관계는 권력 속성상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사이라는 게 정치권의 통설이다.

김 대표가 지난해 10월 '상하이발(發)' 개헌론을 꺼내놓았을 때에도 박 대통령은 상당한 불쾌감과 미묘한 의구심을 드러냈고, 김 대표는 귀국과 함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번에도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자신의 뜻을 접을지는 확실치 않다.

대통령과 맞서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카드를 꺼냈다가 청와대의 한 마디에 곧바로 집어넣는 모습이 자꾸 쌓이는 것 역시 '큰 뜻'을 품은 정치인으로선 결정적 흠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마구 코너로 몰기만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무엇보다도 올해 하반기 국정 최대과제로 꼽은 노동개혁을 비롯해 4대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을 완수하고, 경제활성화 법안 등을 무난히 처리해 집권후반기를 안정적으로 끌고가기 위해선 김 대표의 도움과 여권내 결속이 우선과제이기 때문이다.

또 박 대통령는 과거 어려운 정치적 고비마다 김 대표의 손을 잡고 도움을 받은 인연도 있다.

가장 최근은 지난 2012년 대선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친박계가 주도한 4·11 총선 공천에서 낙천한 상태였지만, 대선판이 초접전 양상으로 흐르자 박 대통령의 부름에 응해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에도 그랬다.

김 대표는 2006년 대선을 준비하던 박 대통령에게 당협위원장을 우군으로 만들려면 일찌감치 선거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 대통령 곁을 떠났다.

두 사람 사이가 순탄치 않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당시 경쟁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역전된 지지율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자 '캠프 좌장'으로 돌아와 박 대통령을 위해 다시 뛰었다.

경선에서 지긴 했지만 당원·대의원 표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