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냉기류' 덮고 국빈만찬서 '화기애애' 분위기 연출
헐리우드스타·CEO 등 200명 초청…퍼스트레이디 '패션 대결'


"같은 손의 손가락처럼 우정과 평화 속에서 협력하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미국 국민들이 보여준 선의에 감사한다.

잊지 못할 미국 방문이었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G2(주요 2개국) 사이의 정상회담은 '냉랭'했지만 국빈만찬 만큼은 '화기애애'했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가 25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백악관에서 시 주석 부부에게 베푼 국빈만찬은 말 그대로 성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집권 이후 국빈만찬을 베푼 것은 모두 아홉 차례로, 이 가운데 두 차례 국빈만찬을 한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

2011년 1월 후진타오 주석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만찬에 초청된 인사 200명은 화려한 면면을 자랑했다.

헐리우드 스타와 재계 최고경영자(CEO)들, 유명 정치인들, 외교거물, 전현직 관리 등을 총망라했다.

두 정상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은 인사들은 월트디즈니 CEO인 로버트 아이거와 애플 CEO인 팀 쿡,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칼라일그룹 CEO이자 자선사업가인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드림 애니메이션 CEO인 제프리 카젠버그,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사티야 나델라, 세일즈포스닷컴 CEO인 마크 베이오프 등 재계의 리더들이었다.

이중 아이거는 오바마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서 현재 상하이에 55억 달러 규모의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건설 중이어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저커버그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현재 임신 중인 부인 프리실라 챈과 함께 나와 눈길을 끌었다.

미·중 수교의 초석을 놓았던 92세 고령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존 케리 국무장관 등 전현직 외교수장들도 참석했다.

미국 인기TV 드라마인 '엠파이어' 제작자인 리 대니얼스와 넷플릭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 미국 영상협회 CEO인 크리스토퍼 도드, 블랙스톤 CEO인 스티븐 슈워츠먼, 모건스탠리 회장인 제임스 고먼, 블랙록 CE0인 로렌스 핑크, 발레리나인 미스티 코플랜드, 여성대법관 소냐 소토메이어, 중국계 여성으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일레인 차오도 자리를 같이했다.

이날 만찬이 열린 장소는 백악관 이스트룸으로, 두 개의 장미를 상징하는 6피트짜리 실크 두루마리가 장식돼 눈길을 끌었다.

백악관 측은 이를 '마음과 마음의 완전한 만남'(a complete meeting of the minds)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미·중이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쟁점현안을 둘러싸고 현격한 입장차를 보인 상황을 역설적으로 비유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검정색 나비 넥타이에 역시 검정색 정장을, 시 주석은 곤청색의 중국풍 정장을 입은 가운데 '퍼스트레이디'간의 패션 경쟁이 볼거리의 하나였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어깨를 드러낸 머메이드 드레스(인어느낌이 나는 드레스)를 입고 나와 참석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 드레스는 중국계 패션 디자이너인 베라 왕이 다지인한 것이었다.

'아시아의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펑리위안 여사는 청록색을 띠면서 화려하면서도 복잡미묘한 문양을 단 실크 가운을 입어 주목을 받았다.

이 가운은 중국 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에 제공된 음식은 1세대 중국계 미국인 요리사인 아니타 로와 백악관 전속 요리사가 함께 준비한 네 가지 코스 요리였다.

주 메뉴는 메인주(州)의 바닷가재와 콜로라도주의 양고기. 검은 송로버섯을 곁들인 야생버섯 수프로부터 시작해 버터로 졸인 바닷가재가 중국 음식인 시금치, 표고버섯, 부추로 감싼 쌀국수 롤과 함께 나왔고 이어 볶은 마늘과 튀긴 브로콜리를 담은 콜로라도산 양고기 구이, 디저트인 양귀비 씨로 만든 빵, 리치로 만든 셔벗 순으로 제공됐다.

백악관 측은 "중국의 향을 담은 미국식 요리"라고 평가했다.

술은 중국 측에서 일명 '소흥주'로 불리는 저장(浙江)성 샤오싱(紹興) 지방의 전통주인 샤오싱 황주가 나왔고, 미국 측에서는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프라이드 마운틴'산 2012년 빈티지 와인과 슈램스버그산 와인을 제공했다.

이날 만찬에는 2009년 그래미상을 받은 유명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 니요가 특별공연도 열어 분위기를 돋웠다.

오전 정상회담에서 심각하고 경직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던 두 정상은 이번 국빈만찬 석상에서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서로에 대한 우의를 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곤경에 처했던 미군 비행기 조종사가 중국의 한 마을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사례를 전하면서 "수십 년이 지난 뒤에 미군 조종사를 구해준 중국인은 '그는 한 손의 엄지였고 나는 다른 손가락이었다.

우리는 형제였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있는 시기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불가피하다"며 "그러나 우리의 관계는 우정에 의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중국 속담에서 '바다가 100개의 강을 포용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지지한다면 우리 양국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중국의 인권상황 개선을 다시금 거론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같은 손의 손가락처럼 우정과 평화 속에서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하면서 중국어로 '간베이'(乾杯·건배)라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이번 미국 방문은 잊지 못할 것"이라며 "서해안에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미국 국민들은 중국인들을 향해 선의(善意)를 보여줬다"고 강조하고 "이 같은 좋은 감정은 반드시 모두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의 발언이 끝난 뒤 서로 웃으면서 잔을 부딪혔다.

한편, 이날 오전 정상회담이 열린 백악관 주변에서는 티벳·위구르 독립을 요구하며 시 주석을 규탄하는 인권단체와, 중국 국기를 흔들면서 시 주석을 지지하는 친중(親中) 단체 소속 수십여 명이 서로 나뉘어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