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만도 못한 과학기술 싱크탱크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센텀사이언스파크. 부산지역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고 총괄할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BISTEP) 개소식이 열렸다.

BISTEP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내세운 핵심 공약인 부산 연구개발(R&D)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의 R&D사업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 시가 수행하는 공공 R&D 평가와 사업화를 촉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산을 과학도시로 발전시킬 밑그림을 그리는 막중한 책임을 졌다. 지자체인 부산시가 중앙정부처럼 R&D 싱크탱크를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가 한 해 1000억원을 R&D에 투자하지만 미래 정책을 세우고, 연구사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평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서울시와 경기도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감지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 문을 연 BISTEP가 정부가 내년 3월 설립을 추진 중인 정부 R&D 싱크탱크 모델을 한발 앞서 구현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 초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을 통합해 한국과학기술정책원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8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능 중복을 막고 효율성을 높인 싱크탱크를 설립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과 해당 기관 관계자들은 정부가 해당 기관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국과학기술정책원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1999년 분리된 STEPI와 KISTEP가 과학기술 정책 입안과 기획·평가를 나눠 맡으며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린 만큼 굳이 통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차적 문제를 떠나 두 정책연구원의 존치 필요성은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과학자들 사이에선 두 연구기관이 현장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나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를 낸다고 불만이 많다. 정책 연구라는 고유 역할에 소홀한 측면이 많았다는 비판까지 있다.

한 대학교수는 “STEPI가 주도하는 대국민 R&D 아이디어 공모전인 X프로젝트와 지난해 10~11월 KISTEP가 연 노벨상 수상자 아이디어 스케치 사진전 등은 정책연구기관의 고유 기능과는 거리가 먼 사업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박근태 IT과학부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