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통화 루블 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음에도 러시아 정부의 재정은 간신히 안정적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19일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석유 관련 수입이 러시아 정부의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고 있어 경제의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다.

원유 가격이 지난 1년 동안 거의 반 토막 난 상태여서 저유가를 감안하면 전체 예산의 20%에 달하는 거액의 적자가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 15일 1∼8월의 재정적자는 예산 대비 2.1%였다고 발표했다.

또 유가가 배럴당 50달러에 머문다고 해도 적자폭은 3%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예측이 가능한 것은 유가가 하락한 만큼 달러화와 비교한 루블화의 가치도 하락한 덕분으로 풀이할 수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기업이 석유 수출로 받는 수입은 달러 기준이기 때문에 루블화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루블화로 환산하는 석유 수입이 늘어난다.

따라서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세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유가와 루블화 가치의 하락폭이 비슷하면 러시아 정부 재정은 안정되는 현상을 시장에서는 러시아 전 재무장관의 이름을 따 "쿠드린의 법칙"으로 부른다고 소개했다.

알렉세이 쿠르딘 장관은 2000년부터 11년 동안 재무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루블화 약세가 진행되면 수입 식료품 등의 가격이 올라 시민들의 생활에는 부담이 가중되는 부작용이 있다.

7월의 인플레이션율은 전년 동월 대비 15.6% 올랐고 시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식료품의 물가 상승률은 18.6%에 달했다.

인플레이션율이 급등함에도 임금은 상승은 뒤따라 가지 못해 7월의 실질 가처분 소득은 전년 동월 대비 2% 감소했다.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어서 시민들 구매력은 현저히 떨어진 셈이다.

이처럼 러시아의 소비와 투자의 감소가 심각한 탓에 러시아의 2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4.6%로 떨어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11일 실질 경제성장률은 올해 -3.9~-4.4%, 내년에는 -0.5~-1%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발표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러시아 경제는 앞으로 몇 년간은 지금까지보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의 생활 수준이 악화되자 단단했던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도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의 독립적 여론 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의 조사에서는 지난 6월에 사상 최고치인 89%에 달했던 지지율이 8월에는 83%로 떨어졌다.

문제는 러시아 정부가 적자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해 당면한 경제적 난국의 극복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러시아 정부의 부채 총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대 중반이어서 크렘린궁에서는 "정부가 다소 빚을 늘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는 이미 자원 의존형 경제의 취약성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을 이유로 러시아 국채의 신용 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강등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 상태에서 러시아 정부가 적자를 크게 팽창시키면 정부 재정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면서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쿠드린 전 재무 장관이 수년 동안 산업 다각화 등 경제 개혁을 주장해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쿠드린의 법칙'이 전제로 삼은 자원 의존형 경제구조는 더욱 심화되는 것이 러시아의 현실이라고 이 신문은 꼬집었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